추억 저장실

[스크랩] 일일일수 제 259신-석양등산, 강천산종주, 주역 巽괘 등

정자 솔 2009. 4. 7. 17:18

 
(785)夕陽裏登山(석양 속에 산 오르니- 4. 4) 哺時朋與陟春山:포시붕여척춘산 山影煙霞岫谷關:산영연하수곡관 物物蘇生方吐艶:물물소생방토염 夕陽反照扮裝顔:석양반조분장안 오후 늦게 벗 더불어 봄 산을 올라가니 산 그림자 노을 섞여 뫼와 골짝 잠겨있네. 물물마다 소생하여 요염을 토하는데 석양 비쳐 얼굴에다 분단장을 하여주네. (786)剛泉山城廣德山周行 (강천산, 산성 산, 광덕산을 두르다 -4.5) 剛泉廣德山作環:강천광덕산작환 環上奇峰聳聳間:환상기봉용용간 半落雲橋人智卓:반락운교인지탁 殘餘城砦史痕慳:잔여성채사흔간 飛龍瀑水垂碧錦:비룡폭수수벽금 開眼櫻花競紅顔:개안앵화경홍안 淑氣淸風春暖裏:숙기청풍춘난리 走行步步感仙寰:주행보보감선환 강천산 광덕산이 고리를 지었는데 고리 위에 기이한 봉 사이사이 솟았구나. 반 떨어진 구름다리 사람 지혜 뛰어나고 남아있는 산성 진터 역사 흔적 아껴지네. 용이 나 듯 폭포 물이 푸른 비단 드리웠고 눈을 연 벚꽃들이 붉은 얼굴 경쟁한다. 맑은 공기 맑은 바람, 봄 따뜻한 가운데에 달려가는 걸음걸음 신선 기분 느껴지네. 강천산 산성 산을 종주하고 2009년 4월 5일 일요일, 러셀산악회 산행 날이다. 청명과 한식이 겹친 이 날이나, 지난날 종친회장 재임 시 같았으면 종친회원들을 데리고 경주 10분 왕릉에 대제에 참여하느라 산행은 엄두도 못 내 었을 터이나, 짐 벗은 지금이라 취미생활과 건강관리만 하면 되는 오늘이 있게 된 것이다. 가현 동생이 챙겨준 덕택에 가까스로 턱걸이 등록을 했었고, 5시에 출발한다기에 3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떤다. 가을엔 세 차례나 올랐던 강천산이나, 이른 봄의 정취를 맛보고, 둘린 산봉들을 종 주한다기에 호기심부터 앞선다. 5시 20분경에 연하 제 너머 ‘예차들’앞에서 ‘영신관광’ 버스에 올라 지리산 휴게소에 들려 (7시 20분)아침식사 타임을 가진 후 강천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8시 40분, 준비를 마치고 곧 산행 이 시작 된다. 병풍바위 폭포를 지나 금강 교 다리를 지나자 바로 오른 쪽 골짜기로 오르는데 된 비알도 두어 차례 오른바가 있어 처음에 비해 그렇게 힘 드는 줄은 모르겠다. 단숨에 깃대 봉을 지나고 삼거리에 배낭을 내려두고 강천산 (584)에 올랐어도 겨우 1시간 걸린 9시 50분이다. 이재홍 산행대장이 나눠준 안내서의 기록을 옮겨보면, 원래는 광덕산이라 불렀으나 도선 국사가 창건한 강천사의 유명세를 입어 ‘강천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하며 앞으로 지나갈 봉우리들과 더불어 전체의 산 형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용천 산(龍天山)이라 불 리기도 한다는데 정상 표석에는 ‘왕자 봉’ 글자가 더 크게 새겨져 있다. 후미를 기다렸다가 다시 진행하는데 전에 갔던 길이라 따라 올랐는데, 현수교 쪽으로 가다가 되 돌아와 우회전하여 송낙 바위 쪽으로 내려선다. 깃대 봉부터는 거의 평지인데다 길도 좋아 동네 뒷산을 지나는 기분이다. 제 1 형제봉을 지나고 495봉에서 방향을 꺾어 10시 55분에 산성 북문에 도착한다. 여기서 사진들을 찍고 바로 산성 산 정상아래 평지에 자리 잡아 점심을 먹는다. 매화 부회장이 독도사랑에게 무거운 짐 맡길 때부터 짐작한대로 멀찌감치 자리를 정하고 청한다. 회를 무치고 오리고기를 굽고, 맥주와 최고로 총무의 오디술이 예외 없이 나온다. 커피와 디저트 가 순서대로 이어지며 ‘형님’ ‘오라버니’를 찾는다. 그냥 챙김만 받으려니 염치가 없는 것 같 아 한마디 않을 수가 없다. “누가 나이 먹으면 서럽다고 했던가? 이렇게 나이대접 톡톡히 받는데!” 매화 동생 왈 “이 오라버니는 7학년 3반이신데……. ” 하자 젊은 친구 왈 “ 저하고 같네요. 저도 73년생인 데요” 하고 웃긴다. ‘73年’과 ‘73年生’ 年과 歲가 같은 뜻이니 ‘生’자 하나 가 더 붙는 것 외에는 같은 게 된다. 식사를 마쳤어도 12시가 덜 찬다. 쳐다보이는 정상이 궁금해서 혼자 올라 보니 능선을 따라 석축 이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기다려도 아무도 올라오지 않아, 대간 때 알바 한 생각이 떠올라 혹시 나 하고 되돌아오니 그제야 올라들 오고 있다. 이 금성 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 되었다고 전해지 며 조선 태종 9년에 다시 쌓고, 광해군 때에 내성과 대장 청을 건립하고, 효종 4년에 성첩(城堞) 을 중수하였다고 하며, 성의 둘레는 7.3km, 면적은 33만평에 달하고 동학란 때에 전봉준이 여기서 친구의 밀고로 마지막을 맞게 되었으며, 이 때 건물들은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칼등 같은 능선 의 축성 위를 걸어 전망대에 올라서니, 골짜기는 골짜기 대로 절경을 이루었고, 멀고 가까이 사방에 첩첩 둘린 산들이 호연지기를 느끼게 한다. 다시 내려 시루 봉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 (12시 27분) 혹은 밧줄을 타고 혹은 철 계단을 밟으며 진행하는데 솔들이 우거져 있어 봄 날씨와 더불어 기분과 기운이 생겨나게 한다. 적우재 고개에 내려서니 헬기장이 넓게 닦여져 있고 임도도 나 있는데, 다른 팀들이 쉬면서 쑥을 뜯고 있다. 이때 시각 12시 50분. 뒤쳐진 회원들을 기다려 마지막 봉우리 광덕산을 오르는데 조 금 경사는 있으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단숨에 올라선다. 사진을 담고 바위에 걸터앉아 시조창 한 가락을 냅다 지르고 나니 이 대장, 허 총무 등이 올라온다. 여기서 의견의 일치를 보아 예정 코스를 버리고 바로 505봉 쪽으로 능선을 타고 내리기로 한다. 드디어 내려선 계곡, 바위틈에서 새어나오는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머리도 감는다. 헤엄치는 송어 떼를 보고, 쏟아지는 폭포를 사진에 담으며, 맨발로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 골짜기를 빠져나 온다. 삼인 대(三印臺)와 강천 사(剛泉寺) 일주문을 지나는데 삼인대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순창군수 충암 김정, 담양부사 눌재 박상, 무안현감 석현 유옥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모임 을 갖고 억울하게 폐위된 조선 중종의 신비(愼妃)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믿어 각자의 관인을 나뭇 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는데, 그 자리에 비각을 세우고 삼인 대라 부른다고 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지나고 있다. 모두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차에 올라 순창 고추장 단자에 이르니 15시 56분, ‘김용순’ 고추장 집에 들려 공짜 막걸리 두 잔을 얻어 마시니 그냥 나올 수 없어 고추장 한통을 산다. 강천산 주차장에서 정준화 회장의 말인즉, 경치는 포항의 내연산에 못 따라오겠는데 관광객을 위한 시설은 너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내연산 계곡의 경치만도 그러하 거니와 동해안의 절경까지 겻 드릴 수 있는 천혜의 자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활용을 할 줄 모 르는 우리인 것이다. 여기 올 때마다 이 단지에도 들리고 들릴 때마다 빈손으로 돌아선 적이 없 다. 대통령 후보의 출신 지역도 저렇다면, 대통령을 낸 우리 고장의 면모와 마음가짐에 달라짐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지리산 휴게소에서 회 비빔밥으로 하산 주 시간을 가지고 17시 50경에 출발해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되어간다. (787)重風巽卦(중풍 손괘 -4. 6) 隨風爲巽小亨焉:수풍위손소형언 君子命申行事全:군자명신행사전 利見大人攸往利:이견대인유왕리 剛乎中正順柔然:강호중정순유연 잇따르는 바람으로 손괘 되어 조금 형통하니 군자가 명 거듭해 일행함이 온전하다. 대인 보면 이롭고, 가는 바에 이로움은 강(剛)은 중과 바름 얻고 유(柔)가 순히 따름이라. 일일일수 제 259 신 松亭(정자 솔) 朴載鎬 鎬朴印載

출처 : 정자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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