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작품방

[스크랩] 170차 솔나불: 이석수출판기념, 서예-老馬之智, 狼子野心

정자 솔 2018. 9. 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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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爲祝李碩壽會長出版紀念(위축이석수회장출판기념)♣♡*  
 
 이석수 회장 출판기념식을 축하함

賀發刊稀貴篇:하발간희귀편
年大作益光筵:년대작익광연
圖本是爲根易:도본시위근역
閥曾前受命天:벌증전수명천
茂子孫承業果:무자손승업과
門後裔繼康緣:문후예계강연
群志氣仍功盛:군지기잉공성
勢丁寧動地然:세정녕동지연
희귀한 책을 엮어 출판함을 축하하니
높은 연세 큰 작품이 더욱 자리 빛나누나.
용마의 하도 본시 주역의 근원 되고
이씨 문벌 일찍 앞서 천명을 받았었다.
크게 번창 이룬 자손 업적 받든 결과이고
장수하는 가문 후예 건강 인연 이었구나.
뛰어난 뜻과 기개 무성한 공 이뤘기에
정녕코 펼친 판세 땅을 진동 하는 듯 다. -2018. 9. 8.

* 河圖: 하수에서 용마가 55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등에 지고 나온 것을 말하며, 복희씨가 이 그림을 연구하여 
역을 지었다고 함.
* 출판 책자명: 이석수의 포항 지명 이야기


 *♡♣老馬之智(노마지지)♣♡*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을 따라 고죽을 정벌했는데, 봄에 떠나 
겨울에 돌아오면서 길을 잃고 말았다.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하고는 늙은 말을 풀어 놓고 그 뒤를 따라가 길을 
찾게 되었다. 산중에서 행군을 하다가 물이 떨어졌다.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 산의 남쪽에 살고, 여름에는 산의 북쪽에 산다. 개미가 
쌓아 놓은 흙이 한 치면 한 길 깊이에 물이 있다.” 과연 땅을 파서 
물을얻었다. 관중의 성명(聖明)과 습붕의 지혜를 가지고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만나면 늙은 말과 개미에게서 배웠거늘,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성인의 지혜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어찌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管仲隰朋從於桓公而伐孤竹, 春往冬反, 迷惑失道. 管仲曰,
 老馬之智可用也. 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 行山中無水, 隰朋曰, 
蟻冬居山之陽, 夏居山之陰,蟻壤一寸而仞有水. 乃掘之, 遂得水. 
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 至其所不知, 不難師與老馬老蟻,
 今人不止以其愚心而師聖人之智, 不亦過乎.)」
이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 〈설림 상(說林上)〉》에 나오는데, 
관중이 늙은 말을 이용하여 길을 찾았다는 말에서 ‘노마식도’가 유래했다.
 ‘노마지도(老馬知道)’ 혹은 ‘노마지지(老馬之智)’라고도 한다.

 *♡♣狼子野心(낭자야심)♣♡* 

'늑대 새끼는 작아도 흉포한 성질이 있어 길들이기가 어렵다.'
'흉포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힘들다 '는 뜻이다
춘추 시대 楚(초)나라의 鬪子文(투자문)은 若敖(약오)씨의 후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태어난 직 후 들에 버려졌는데 호랑이가 주어다가 
길렀다고 한다.나중에 그를 발견한 사람이 "이 아이에게는 복이 있다"며 
데리고 갔다.투자문은 뒤에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사람 됨됨이가 공정하며, 법 집행도 엄정 공명했다. 한 번은 그의 친척이 
법을 어긴 일이 있었으나 담당 관원이 체면을 생각하여 그를 석방했다. 
그것을 안 투자문은 즉시 담당 관원에게 말했다.
  "국가가 법률을 만들고 담당 기관을 설치했는데, 법 집행자가 법을 
무시하고 죄인을 석방하면 안 된다. 비록 나의 일가붙이일지라도." 
그리는 그를 넘겨주어, 공평한 심리를 하든가 아니면 자해를 시키든가 
하라고 명하여 백성의 비난을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담당 관원은 그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초나라의 成王(성왕)은 즉시 그의 집을 찾아가서 
경의 표했다. 초나라 백성들도 그 말을 듣고 저마다 말했다.
"모두가 투자문 같다면, 초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무엇을 
걱정하랴." 투자문의 아우로 병부상서 子良(자량)의 아들 越椒(월초)를 
보러 간 투자문이 말했다."저 애를 어서 죽여라. 자라서 틀림없이 우리 
약오씨에 화를 가져 올 것이다."狼子野心(낭자야심)"대로다. 
그러나 자량은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걱정한 자문은 죽는 자리에서 
가족에게 유언했다."월초가 권력을 장악하거든 도망쳐라."
그는 장래에 월초가 일족을 수중에 넣고 전멸시킬 것을 염려했다.
 그가 죽은 뒤에 아들 般(반)이 재상이 되고, 월초도 아버지의 대신하여
 병부상서가 되었다. 기원전 626년에 성왕의 아들 商臣(상신)은 부왕을 
시해하고 왕이 되어 穆王(목왕)이라 칭했다. 
반은 알고 있었으나 발설하지 않았다.
 월초는 이 기회에 재상 자리를 빼앗으려고 목왕에게 반을 중상했다.
목왕은 월초와 爲賈(위가)의 말을 믿고, 반을 죽이고 월초를 재상에, 
위가를 병부상서에 각각 발탁했다.월초는 20년간 재상직을 보았다
 그 사이에 목왕은 죽고 莊王(장왕)이 즉위했다.
그는 장왕을 내심 경멸하면서도 왕이 위가를 중용하여 그의 권력을 
삭감하려는 것을 원망하여 모반을 꾀하였다.
월초는 장왕이 외국으로 원정 나간 틈을 타 약오씨 일족을 이끌고 위가를 
습격하여 그를 체포하여 죽여 버렸다.
그것을 안 장왕은 투씨의 역대 공적을 생각하여 월초에게 사죄시켜 사태를 
수숩하려고 월초의 아들을 인질로 내놓으라고 제의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다음 해 7월경, 월초와 장왕 양군이 교전하여 장왕은 약오씨의일족을
 몰살시켜 버렸다.월초의 "狼子野心"은 마침내 여기까지 발전하여 
투자문이 염려한 대로 약오씨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松亭(정자 솔) 朴載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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