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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낙동정맥 16차 종주를 마치고

정자 솔 2007. 2. 28. 22:37



    洛東正脈十六次縱走
 낙동정맥 16차십육차 종주(이리재~시티재)
鳳 坐 山 姿 鳳 坐 形: 봉 좌 산 자 봉 좌 형
雄 峰 道 德 又 神 靈: 웅 봉 도 덕 우 신 령
晦 齋 浩 氣 猶 餘 逗: 회 재 호 기 유 여 두
圃 隱 忠 魂 不 遠 停: 포 은 충 혼 불 원 정
扶 老 笻 端 穿 葉 片: 부 노 공 단 천 엽 편
報 春 躑 躅 發 花 香: 보 춘 척 촉 발 화 향
有 名 三 頂 探 無 漏: 유 명 삼 정 탐 무 루
肝 腦 胸 心 也 自 寧: 간 뇌 흉 심 야 자 령
봉자 산 모양새가 봉이 앉은 형상인데
웅장한 도덕 산봉 이 또한 신령하다.
회재 선생 호연지기 오히려 남아 있고
포은 선생 충성 혼백 불원 상간 머무르네.
부축하는 지팡이 끝 낙엽 조각 뚫어 꿰고
봄 알리는 진달래가 꽃을 피워 향기 낸다.
이름난 산 세 정상을  빠짐없이 찾고 나니
몸 마음 할 것 없이 절로 편안해지노라.
        2007. 2. 25. 

    낙동정맥16차(이리재에서 시티재) 종주를 마치고 정자 솔 박 재 호 2007년 2월 24일, 바로 어제에 한림산수회가 참가인원 반밖에 오르지 못한 양산 천성 산을 6 시간에 걸쳐 완주를 했는데 다 술 까지 마신 탓 으로, 일어나는 몸이 가볍지가 않다. 여장을 꾸려 신동아 뒤편에 승용차를 몰아다 세워두고 나오니 벌써 버 스가 와 서서 불을 깜빡이고 있다. 사격장 앞을 돌면서 회원들을 태우고 운동장에 도착하니 6시 40분 경. 지난달보다는 차들이 적어 차를 몰아넣 을 수 있으나 그래도 복잡하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조금 형편들이 나아지자 시골에서도 계를 모아 명승 지를 찾아 ‘관광’을 다니더니, 점차로 발전하여 약수터나 유원지를 찾 아 ‘먹고 마시는 놀이문화’로 번졌는데 이제는 산을 찾는 인구가 절대 적이다. 국토의 70 %를 차지하는 금수강산 자원을 10분 활용하는 바람직 한 웰빙 문화라 여겨진다. 국토를 사랑해서 답사하고 종주하는 참 산 꾼, 마루금 산악 회원들처럼 자연을 아껴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7시를 넘기면서 출발한 버스가 봄을 재촉하는 봄비에 대비하여 기계 소 재지에서 우의를 사느라 지체함이 있어 이리 재에 도착했을 때는 7시 55 분이다. 준비를 마치고 8시가 조금 지나서야 산행이 시작 된다. 오늘 구간은 짧아 시간 여유가 있을 것도 같은데 몸에 익은 산 꾼들의 기본보속 때문에 가 파른 오름길도 그냥 마라톤이다. 흰 우의들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오르니 익살꾼 ‘호랑이’가 내려다보 며 하는 말이 “모두 상주들 같다”하기에 받아 웃어넘기며 한참을 따라 오르니 봉좌 산 갈림길에 김원기 등반대장이 기다리고 서서 봉좌 산 정상 에 갔다 오란다.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급경사를 올랐던 몸이라 가방을 내려놓고 걸으니 날아가는 기분이다. 달리다 시피 정상(600m)에 도착해 보 니 바위 봉이 범상치가 않다. 도로를 지날 때 마다 쳐다봤던 봉이 앉은 모 습의 그 바위에 올라섰으나 짙은 안개로 시계가 가려 멀리 조망할 수 없음 이 아쉬웠다. 사진 한 컷만 찍고 돌아와 갈림길에 이르니 시각은 9시를 가 리킨다. 한참을 진행하는데 최 부회장 등 몇 분이 회 안주로 한잔하고 있다. “뒤에 쳐지니 이런 재미도 있구나.” 하면서 태옥 씨가 가져 온 포도주를 마시고는 출발을 서두른다. 급경사를 내려가는데 진달래가 벌써 피었다고 환성을 지르기도 한다.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 개를 지나니 임도가 나타나 는데 여기가 배티 재인 것 같다. 시간은 9시 47분. 임도를 4~50m 정도 걸 어 왼쪽으로 정맥 길이 이어진다. 다시 꾸준한 오름길이 계속 되더니 다시 갈림길이 나서고 김 대장이 기 다리면서 도덕산 정상 길을 가르쳐 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위들이 늘어선 정상(703m)이 나타나고 손 동학 후배가 잡아 이끌며 최 태근 회장 등과 사진을 담게 한다. 비도 멎고 날씨가 개어 비옷은 물론 윗도리도 벗어 넣는다. 10시 30분에 정상에서 돌아와 갈림 길에서 내려오는데 듣던 대로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돌너덜도 넓게 보인다. 건너다보이는 골짜기가 영천시 고경 면 오룡리로 이태옥씨가 자란 친정 마을이란다. 그렇다보니 화제는 자연히 그쪽으로 흐른다.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 옛날에는 타성들이 발을 못 붙였다 느니, 골짜기에 컸어도 나가서는 모두 출세를 했다고 하며, 누에씨 채종 마 을로 한때는 골짝 모두가 뽕밭이었다고도 한다. 가로질러 나 있는 포장도로에 내려서서 사진을 담고 다시 오룡리 쪽으로 정 맥 길로 올라선다. 11시가 넘어가니 배고프다고 아우성들이다. 마침 잘 정돈 된 산소가 있어 점심 자리를 만든다. 상석에는 ‘月城李公某也之墓’라고 새 겨져 있다. 밥 먹는 재미로 산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점심시간을 언제 나 즐거운 분위기다. 술을 들고 와서 권하기에 받아먹고는 고마워서 “마루 금산악 회원들은 예의들이 바르더라.” 고 하니 누가 받아 하는 말이 “학교 선생님들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한다. 이유야 나변에 있든 항상 느껴오 는 바다. 식사 후 단체 사진을 찍고 11시 46분에 출발하여 북쪽 천장산(694.8m)을 뒤로 하고 왼쪽으로 삼성산을 향해 오르는데, 도덕산에서 건너다 볼 때는 나지막하더니 오르려고 쳐다보니 아득히 높다. 특히 식사 후라 숨이 차다. 골말 재를 지나고 앞 따라 진행하는데 다시 김 대장이 지켜 서서 삼성산 정 상을 안내한다. 초이님과 두세 사람이 가방을 벗어두고 가는데 그 거리가 30분이나 걸릴 정도로 멀다. 이래서 태옥씨는 따라붙지 않았나 보다. 10여년 을 산을 탔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산은 거의 올라보지 못했는지라 모두 정상 을 밟아보리라 마음 먹었기에 왕복을 하기로 한다. 13시에 삼성산(578.2m) 정상에 도착하여 사진 몇 컷을 찍고 갈림길이 이르니 13시 30분이다. 여기부터는 가장 후미가 되고 마는데 원도희 등반 대장이 뒤에서 챙긴다. 간혹 기록해야 될 곳에 이르러 사진을 찍게 되니 더욱 시간은 지체되나, 그 로해서 피해를 줄 수 없기에 평지에서는 남아있는 다리 힘을 최대로 발휘한다. 간혹 오르기는 해도 대체로 내리막인지라 마루금이 아닌 다른 산악회라면 따 르지 못할 속도로……. 송이 밭 인양 금줄이 길게 쳐져 있고 헬기장 같이 불럭이 깔린 한 편에 약 간 높은 단이 쌓여져 있었는데 무엇 하는 곳인지 숙제는 풀지 못하고 지나쳤다. 선두 그룹이 도착했다는 무전 연락이 올 때는 저 멀리 시티 재를 오르는 도로 가 펼쳐지고 곧 이어 안강휴게소 대한민국 지도상 앞에 도착하니 14시 10분이 다. 총괄대장 손동학 후배가 가방도 풀기 전에 끌어다 자리에 앉히고 최 회장 께서 올 세트를 나를 위해 주문한다. 전 풍수 아우님이 저쪽에서 옮겨와 해 바뀐 인사로 잔을 부딪치고, 아름다운 여성 회원들은 미소를 담아 잔을 보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13시에 출발하여 15시 25분에 운동장에 도착하고, 앉은 채 신동아에서 내려 승용차에 올라 집에 도착해 보니 16시 5분이다. 산행한 날치고는 가장 일찍 도착한 기록이 된다.


출처 : 포항마루금산악회
글쓴이 : 정자 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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