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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판 사판?

정자 솔 2007. 11. 23. 17:55

    * 이판과 사판 *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우린 흔히 ‘에라! 이판사판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흔히 쓰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에서 유래하였다. 대승불교의 최고경전이라 일컬어지는 ‘화엄경’에서는 세계의 차원을 이(理)와 사(事) 2가지로 설명한다. 이판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에 대한 판단이라면, 사판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에 대한 판단이 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모델 인격은 이판사판에 모두 통달한 인물이다. 한국의 지적 전통에서 볼 때 고려 불교의 이·사 개념은 조선시대 성리학으로 넘어오면서 이(理)와 기(氣)로 계승되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판과 사판을 통합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놓치게 되고, 고준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다 보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못 끄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회과학에 통달(?)한 사람을 만나보면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은 막힘이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 수수깡처럼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개량한복 입고 동양철학의 심오한 이치에 심취한 사람들을 보면 인간적 훈훈함은 있지만, ‘사회학적 상상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양쪽을 종합하는 능력이다. 세계의 실상은 양쪽을 종합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삼성의 이병철은 이판과 사판을 독특한 방식으로 넘나들었던 도사급 인물이었다. 경영이나 인재발탁에 있어서 이판과 사판을 종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의 이력서에 나타난 데이터가 사판에 필요한 자료라고 한다면, 관상과 사주팔자는 이판에 활용하였다. 그 사람이 배신을 하지 않을 것인지, 타고난 복이 많은 사람인지의 여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판에 속한다. 그래도 순서가 있다. 선사판 후이판(先事判 後理判)! 사회과학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온 386세대는이판의 세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가 좌우의 두 날개로 날듯이, 경륜도 이판 사판에서 나온다.


출처 : 정자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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