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작품방

[스크랩] 일일일수 제 211 신- 대간 9차, 백솔이 발표회 등

정자 솔 2008. 11. 12. 20:14
 
(641)大幹第九次南德裕區間縱走 (백두대간 제 9차 남덕유산 구간 종주 -11. 11) 六十嶺兮多事緣:육십령혜다사연 北南德裕衆山先:북남덕유중산선 月城冬葉岾雲白:월성동엽재운백 合米西峰頂石玄:합미서봉정석현 綠竹露含張錦繡:녹죽노함장금수 丹楓屛設作壺天:단풍병설작호천 舞龍飛虎登餘勢:무룡비호등여세 也應神明雨霽鮮:야응신명우제선 육십령 고개 마루 많은 사연 지녀있고 북 덕유산 남덕유산 뭇 산중에 으뜸 되네. 월성 재, 동엽 재에 흰 구름 덮여있고 합미 봉 서봉 정상 바위 엉켜 검은지고. 푸른 대 이슬 품어 비단 수 펼쳤었고 단풍이 병풍 쳐서 신선세계 지었구나. 춤추는 용, 비호같이 오르고도 남는 기세 신명도 느껴 응해 비 개어 맑아진다. * 舞龍: 용이 춤추듯 이란 표현 외에 무룡 산이 구간 내에 있기도 함 * 壺天: 壺中天, 별세계, 仙境의 뜻. 漢代에 仙人 壺公이 하나의 항아리를 집으로 삼고 술을 즐기며 속세를 잊었다 함.
(642)白率伊發表會(백솔이 노래 발표회 -11. 12) 白率伊歌發表筵:백솔이가발표연 滿場唱舞又琴絃:만장창무우금현 佞人觀客呼應裏:녕인관객호응리 旋律餘音亘夜天:선률여음긍야천 백 솔이 삶의 노래 발표하는 자리 여니 창과 춤 거문고 소리 장내에 가득해라. 노래 사람 구경꾼들 호응하는 가운데에 선율의 긴 여음이 밤하늘에 뻗어가네. (643)修能試驗(수능시험 -11. 13) 多幸今年氣不寒:다행금년기불한 修能試者體膚安:수능시자체부안 免雖形役心何逸:면수형역심하일 苛酷生平一二門:가혹생평일이문 다행히 금년에는 일기가 춥지 않아 수능시험 치는 아이 몸은 편안하겠구나. 몸 비록 편타하나 마음 어찌 편할 손가? 평생 삶 한두 차례 가혹한 관문이네. 백두대간 제 9차 종주후기 2008년 11월 9일 일요일. 제 9차 백두대간 종주일이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11차 구간인데, 국립공원인 남덕유산의 입산통제 기간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차례를 바꾸어 실시키로 한 것이다. 며칠 사이 목감기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구간 거리가 멀고 산들이 높아 걱정이 앞서서 인지 잠을 설치고 새벽길을 나서야 했다. 4시 30분, 지난번과 같이 연하 재 너머 예찬들 식당 앞에서 차에 올라 거창 휴게소에 잠깐 들렸다가 산행 들머리 해발 730m의 육십령 고개에 도착하니 7시다. 육십령의 이름 내력으로는 고갯길 60구비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고, 안의 현에서 부터 60리 밖의 고개라는 뜻으로도 풀기도 하며, 산적이 많아 ‘60명이 모여 넘는 고개’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겨울을 재촉하는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일기 예보와는 달리 아직도 내리고 있 어 일회용 비상 우의를 입고 서둘러 오른다. 접속 구간을 포함하여 24km가 넘는 거리라 산행마라톤이 아니면 종주하기 어렵다는 하회장의 차내의 다짐도 있었기 때문이라 서두르다보니 우의 단추도 제대로 끼우지 못한 것이 보기 딱했던지 꽃님께서 돌아서서 끼워주기도 한다. 7시 40분에 첫 헬기장을 만나고, 계속 가파른 경사 길을 오르더니 암벽 줄타 기를 몇 차례를 하고서야 7시 50분에 해발 1,020m의 합미봉(合米峰 일명 할미봉) 에 올라선다. 1시간 20분 걸린다는 거리를 50분도 걸리지 않은 빠름이다. 이 할미봉은 백두대간 줄기에서 우뚝 솟은 암봉이어서 사방이 천 길 낭떠러지 를 이루고 있고 형제바위 대포바위 등의 명소와 주위 경관이 빼어나다고 하나 짙은 안개비로 해서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아래에는 성터가 있는데, 옛날 어 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할미성이라 했고, 할미성 이 있는 산봉우리를 할미봉이라 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중턱에 규모가 큰 규석광산이 있는데 규석이 쌀처럼 생겨서 쌀미 봉이라 했다는 설과, 옛날 어느 예언가가 이산에서 온 백성이 석 달을 먹을 양식이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일제 시대에 많은 규석이 이 광산에서 채굴되어 돈으로 따지면 온 국민이 석 달을 먹을 양식보다 더 많은 양이 나왔을 것이라고 하며, 규석광이 일제시대에 개발 된 것이기 때문에 쌀미봉이라 한 것이 할미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단다. 할미봉을 내려서면 이후로는 평탄한 능선 길. 작은 봉우리 2~3개를 편안하게 넘어서니 길이 넓어지고 한참을 올라가니 헬기장이 나온다. 이때 시각 9시 7분. 헬기장서부터는 계속 오르막이다. 20여분 올라가니 높이가 고만고만한 암릉이 나타나고 암릉 구간을 진행하니 1.510m의 장수덕유산(남덕유산 서봉)에 올라선 다. 시각이 10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어 할미봉에서 2시간 25분이 걸린 셈이다. 여기서 안부까지는 내리막이다가 산죽이 밭을 이루고 있는 안부서부터 남덕유 산까지는 줄곧 오르막이다. 사진기가 습기로 해서인지 말썽을 부려 머뭇거리는 사이 뒤쳐져 버린지라 속도를 내어 오르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지도를 볼 여유도 없이 위만 보고 올라가니 아우들 몇 사람이 쉬면서 ‘배낭을 내려놓고 올라갔다 오라’고 한다. 잠깐 오르니 바위 봉 위에 ‘남덕유산’ 팻말이 서 있다.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 기다리니 아우들 몇이 올라온다. 10시 55분이다. 독사진만 찍고 내려서는 나에게 형님도 함께 찍잔다. 정 나는 순간이다. 월성 치까지는 다시 줄곧 내리막. 비가 그리 많이 온 것 같이는 않는데, 길이 질어서 신발과 옷에 흙투성이가 된다. 11시 30분에 월성치에 내려서고 삿갓 봉 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삿갓 봉이 금방일 듯싶지만 한참을 더 올라야 한다. 오르막에서 두어 봉우리를 넘어서면 삿갓 봉 직전 봉우리인 1,340m봉이다. '남덕유 3km, 향적봉 13km'라 쓰인 이정표가 있는 이 봉우리에서 삿갓봉은 지 척이다. 길은 삿갓봉 정상 서쪽으로 살짝 비켜 나 있다. 300m의 거리 밖에 안 되는 이정표를 보고도 삿갓재 대피소 13시 약속을 의식해서 오르지 않고 앞사람 따라 옆길로 빠지기로 한다. 여기서부터는 카메라가 먹통이 되어 아우들의 신 세를 지게 된다. 달리다 시피 하여 대피소에 이르니 하회장이 기다리며 실내로 안내한다. 아침 식사라고 준비해간 호박 부침을 반도 못 먹었는데 식욕이 없다. 러셀 허 총무 부부가 협찬해서 나눠가진 감을 깎아 먹고 일어서니 점심 도시락은 고스란히 남 아 짐만 무겁다. 정왕락 아우를 독촉하여 출발하니 13시가 지나고 있다. 계단을 올라 얼마를 지나니 헬기장이 나오고 두어 개 봉우리를 넘어서니 나무 하나 없는 초원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밥을 먹어서인지 힘 이 좀 나는 것 같다. 젊은 아우들과 보조를 맞추다 보니 정 후배가 뒤로 쳐진다. 무룡산(1.492m) 정상에 올라서 사진들을 찍고는 곧장 내닫는데 시속 4 km 속도 다. 마지막 넘을 봉우리를 앞에 두고 처음으로 앉아 쉬는데 날씨도 개어 서쪽 에 기운 햇살이 비춰준다. 종주에서 가장 사람 겁먹게 하는 것은 기진한 마지막 단계에 높은 봉우리가 버티고 서 있음인데, 넘어야 할 바위산이 솟아 있어 걱정이 되었으나 오르고 보니 길이 옆으로 비켜있어 걸을 만하다. 펼쳐져있는 산죽 밭 사이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내리니 동엽령이 나오고 등반대장이 기다리며 우리까지가 35명이라고 한다. 이미 30명 가까이가 내려가고 15명 정도가 뒤에 오거나 중간에서 탈출한 것이 된다. 이때 시각 오후 3시경이다. 쉴 틈도 없이 무릎 보호대를 차고 미끄 러져 내린다. 지루함이 끝나는 순간 맑은 계곡물이 소리 내며 흐른다. 종일을 혹사한 발이기에 물에 넣고 식힌다. 열난 자동차 엔진을 식히듯 열난 발을 찬물 에 적시는 것이 음양의 조화도 되기 때문이다. 다시 출발해서는 길도 평탄하여 앞에 서서 달리다시피 하여 골짜기를 벗어나 는가 싶더니 어느새 와있던 하회장이 배낭을 받아들며 반긴다. 병곡리 하산 지 점에 버스가 기다리고, 시각은 오후 4시 반이 되고 있다. 장장 9 시간 넘게 쉴 틈도 없이 산을 오르내린 것이다. 아우들의 찬사가 아니더라도 내 스스로 대견한 생각니 든다. 이 상협 조합장에게 이끌려가서 맥주 두 잔을 마셔 갈증을 풀고 후미가 도착 하여 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쌓인 피로로 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코까지 골게 된다. 거창 휴게소에 주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 몰려 귀가 시간이 지체 된다. 마지막 단풍을 즐기랴 모두가 나들이를 한 탓이다. 못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컴 을 열어 답신들을 보내고 나니 자정이 넘어간다. 일일일수 제 211신 松亭(정자 솔) 朴載鎬 鎬朴印載
출처 : 정자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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