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장한가(長恨歌)
長恨歌
백거이(白居易)
장한가(長恨歌)는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를 주제로 한 담화시(譚話詩)다. 현종(玄宗-685~762)은 당(唐) 나라의 6대 황제로써, 이름은 이융기(李隆基)이고, 45년 동안 재위에 있었다. 학문과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즉위 초에는 정사에 온 힘을 경주하여 개원(開元)의 치(治)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총명했던 현종도 만년이 되자, 정사에 점점 게으르게 되고 사치와 애욕에 빠지면서 아첨만을 일삼는 신하들을 가까이 하여 나라를 거의 파탄지경까지 끌고 갔다.
736년 장구령(張九齡) 등의 현신들을 대거 내쫓고, 간신 이임보(李林甫)를 기용했다. 임보(林甫)는 그의 간사스럽고 교활한 재주를 발휘하여 무혜비(武惠妃) 및 환관(宦官)들과 결탁, 황제(皇帝)를 미혹시켜 국정(國政)을 어지럽혔다. 얼마 후 무혜비가 죽자(745), 현종(玄宗)은 무혜비 사이에서 난 그의 아들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인 양(楊)씨를 빼앗아 귀비(貴妃)로 삼았다. 현종이 양귀비를 총애(寵愛)하여 그녀의 일족도 모두 높은 관직에 등용되었다. 현종은 양귀비의 6촌 오빠 양쇠(楊釗)에게는 국충(國忠)이라는 이름을 직접 하사하고, 이임보(李林甫)의 뒤를 이어 재상(宰相)으로 임명했다.
이 때부터 현종(玄宗)이 정사를 게을리 함으로써 당나라의 국정은 문란하게 되어 지나친 향락과 사치로 국고가 바닥이 나고, 백성들에게는 중과세를 부과하게 되니 백성들의 생활은 곤궁해졌다. 두보(杜甫)의 <自京赴奉先縣詠懷(자경부봉선현영회 :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면서 회한을 노래함)>라는 시의 “朱門酒肉嗅(주문주육취 : 붉은 대문 안의 궁궐에는 고기와 술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路有凍死骨(로유동사골 : 봉선으로 가는 길 위에는 얼어 죽은 자의 해골이 가득하구나!)” 이라 읊은 것은 그 당시의 학정과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한탄한 것이다.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천하게 여겼으므로, 지방 절도사(節度使)에는 이민족의 무장들을 기용했다. 그 때문에 당나라 조정은 지방절도사들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 결국은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이 일어나게 되어 당(唐)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안록산(安祿山)은 영주(營州)의 유성(柳城-河北省)에 살던 호인(胡人)으로, 성격이 굳세고 용감하면서도 사람들의 뜻에 영합하기를 잘 했다.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주어 현종(玄宗)의 신임을 얻어, 평려(平麗)의 절도사에서 범양(范陽-幽州), 하동(河東)의 절도사를 겸하고, 또 이임보(李林甫), 양귀비(楊貴妃)에게 잘 보여 동평왕(東平王)이 되었다.
그러나 양국충(楊國忠)이 재상(宰相)이 되자, 그와 의견이 같지 않아 드디어 범양(范陽)에서 반기를 들었는데, 천보(天寶) 14년 기원 755년) 11월에, 15만의 병력으로 하북(河北)을 평정하고, 다음 해 장안(長安)을 점령하자, 국호(國號)를 대연(大燕), 연호(年號)를 성무(聖武)로 하여 스스로 황제라 칭했다.
현종(玄宗)은 서둘러서 도성(都城)을 빠져 나와 촉(蜀)으로 달아나던 중, 백여 리 되는 마외파(馬嵬坡)에 지날 때, 황제의 근위대가 ‘난(亂)의 원인이 된 양국충(楊國忠)과 양귀비(楊貴妃)를 죽이라.’고 요구하니, 현종(玄宗)은 할 수 없이 두 사람을 사사(賜死)했다. 양귀비(楊貴妃)는 마외파(馬嵬坡)의 불사(佛寺)에서 고력사(高力士)에 의하여 교살되었다.
현종(玄宗)은 태자(太子) 이형(李亨)에게 양위(讓位)하고 국권 회복에 전념하게 하여, 태자(太子)는 756 년 영무(靈武)에서 즉위, 숙종(肅宗)이 되고 현종(玄宗)은 상황(上皇)이 되었다. 뒤에 곽자의(郭子儀)가 장안(長安)을 탈환하고 757 년에 숙종(肅宗)은 상황(上皇)과 함께 장안(長安)으로 환도하였다.
현종(玄宗)은 그 후 실의에 빠져 외롭게 지내다가,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한편 안록산(安祿山)은 그의 아들 안경서(安慶緖)에게 살해 당하고 그 부하들이 얼마간 항거를 계속했으나 결국은 란이 발생한지 8년만에 진압되었다.
양귀비(楊貴妃)는 지금의 사천성인 촉주(蜀州)의 사호(司戶) 양현염(楊玄琰)의 딸로서 일찍이 고아가 되어 숙부(叔父)인 하남(河南)의 부사조(府士曹) 양현경(楊玄璥)의 집에서 자랐다. 후에 황태자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가 되었다.
현종은 수왕의 비가 절세미녀라는 소리를 듣고 사람을 시켜 술자리에 불러오도록 시켰다. 현종이 보니 수왕비는 미모가 빼어날 뿐 아니라 음악이나 가무에도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술자리에서 현종이 직접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라는 악보를 보자 그녀는 즉석에서 곡에 맞추어 노래와 춤을 추었다. 현종은 이로써 양귀비에게 혼백을 빼앗기게 되었다. 현종은 우선 양귀비를 여도사(女道士)라는 관직에 임명하고 태자궁에서 남궁(南宮)으로 옮겨 살게 한 다음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리고 다시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고쳐 부르게 하였다. 이때 귀비의 나이는 22 세, 현종(玄宗)은 56세였다.
백거이는 시(詩)에서 불륜(不倫)의 사실은 건드리지 않고, 아름다운 연애(戀愛) 이야기만을 다루었다.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미색을 좋아했던 한황(漢皇)은 경국(傾國)지색 생각하며
* 한황(漢皇) : 한(漢) 나라의 무제(武帝)를 말함. 직접 거론하기가 어려운 당시의 황제인 현종를 대신하여 한 무제를 들어 칭한 것이다.
* 경국(傾國)/ 절세의 미녀를 칭하는 말로서, 그 어원은 한 무제 때 이연년(李延年)이 무제에게 자기의 누이를 추천하며 ‘ 북방의 아름다운 사람 있는데, 세상에 다시없이 빼어났네. 한 번 돌아보니 성이 기울고, 두 번째 돌아보니 나라가 기우네(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라고 한 시구에서 나왔음.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나라를 다스린 지 여러 해가 되도록 찾았으나 구하지 못했다.
楊家有女初長成(앙가유년초장성)
양(楊)씨 집안에 딸이 있어 이제 막 장성하였는데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규중심처에서 자라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天生麗質難自棄(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미색은 원래 스스로 버려지지 않는 법이라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어느 날 아침에 뽑히어 군왕 곁에 있게 되었다.
回頭一笑百眉生(회두일소백미생)
고개 돌려 한번 웃으면 온갖 교태 일어나니
六宮粉黛無顔色 (육궁분대무안색)
육궁(六宮)의 가꾼 얼굴들은 빛도 나지 않았다.
* 육궁분대(六宮粉黛)/ 천자(天子)의 후궁에 있는 미인(美人). 천자(天子)에게는 6채의 궁(宮)이 있었다. 분(粉)은 백분(白粉), 대(黛)는 눈썹 그리는 먹.
春寒賜浴華淸池(춘한사욕화청지)
봄 날씨가 차다 하여 화청지서 목욕하게 하니
* 화청지(華淸池)/ 여산(驪山) 화청궁(華淸宮)의 온천.
溫泉水滑洗凝脂(온천수활세응지)
온천 물 매끄러워 엉킨 연지 씻어 낸다.
侍兒扶起嬌無力(시아부기교무력)
교태 몸매 힘이 없어 시녀가 부축해 일으키니
始是新承恩澤時(시시신승은택시)
비로소 이 시절 황상(皇上)의 은총 입었구나.
雲髮花顔金步搖(운발화안금보요)
구름같은 머리에 꽃 같은 얼굴, 금보요(金步搖)를 꽂고
* 운빈(雲髮)/ 구름이 펴오르는 것 같이 숱이 많은 검은 머리채.
* 금보요(金步搖)/ 황금(黃金)으로 만든 비녀로, 걷게 되면 흔들리는 장식(裝飾)이 달려 있다.
芙蓉帳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
부용 침실 휘장 안 봄밤을 지냈으니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봄밤이 피곤하고 짧아 해 높아야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불조조)
이로부터 군왕은 조회(朝會) 일찍 못 열었다.
承歡侍宴無閒暇(승환시연무한가)
연석(宴席)에도 함께 하니 한가할 틈 없었고
春從春遊夜專夜(춘종춘유야전야)
봄이면 봄놀이 따라가고 밤이면 밤 독점 했네.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후궁(後宮)에는 미인이 삼천이나 되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삼천이 받을 총애 한 몸에만 있었다.
金屋粧成嬌侍夜(금옥장성교시야)
금옥(金屋)에서 단장하고 교태로 밤에 모시고
玉樓宴罷醉和春(옥루연파취화춘)
옥루의 연회 끝나면 취한 얼굴 화창한 봄 같았다.
姉妹弟兄皆列土(자매제형개열토)
양씨의 자매 형제, 제후(諸侯)에 봉해지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찬란한 그 광채가 가문(家門)을 빛냈었다.
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마침내 천하 부모 마음들이
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아들을 낳기보다 딸 낳기를 중하게 여겼다.
驪宮高處入靑雲(여궁고처입청운)
여산의 화청궁 높은데 푸른 구름 들어오고
* 청운(靑雲)/ 희망과 출세를 상징.
仙樂風飄處處聞(선악풍표처처문)
신선(神仙)의 풍악소리 바람 타고 곳곳에 울려난다.
緩歌慢舞凝絲竹*(완가만무응사죽)
고운 노래 느린 춤이 관현악기 엉겨
* 응사죽(凝絲竹)/ 현악기(絃樂器)와 관악기(管樂器)의 소리를 길게 끌어올리는 것을 말함.
盡日君王看不足(진일군왕간부족)
해가 지도록 보고 봐도 군왕은 부족했다.
漁陽鼙鼓動地來(어양비고동지래)
어양(漁陽)의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니
* 어양(漁陽)/ 안록산이 난을 일으킨 곳으로 지금의 천진시(天津市) 계현(薊顯)이다.
* 비고(鼙鼓) : 말에 싣고 다니며 싸움이 벌어지면 북을 쳐서 공격(攻擊) 신호로 삼았다.
驚破霓裳羽衣曲(경파예상우의곡)
놀라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파했구나.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구중(九重)의 궁궐에는 연기 먼지 일어나니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행)
천승 수레 만필 기병 서남(西南)으로 달아났다.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행복지)
군왕 깃발 바람에 흩날리며 가다 다시 멈추니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도성에서 서쪽으로 백여 리를 나와서다,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불발무나하)
육군(六軍)이 멈추어 섰으니 어찌 할 바가 없어
* 육군(六軍)/ 천자의 군대를 말한다. 원래 주나라 때의 군사제도로써 천자는 군대를 6군, 공(公)은 3군, 후백(侯伯)은 2군, 자남(子男)은 1군을 보유하게 된데서 나온 말이다. 1군의 편제는 12,500명이다.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아리따운 미녀가 말 앞에서 죽는구나.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금비녀가 뒹굴어도 줍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취교(翠翹), 금작(金雀)에 옥소두(玉搔頭)도 같이 굴렀다.
* 취교(翠翹)/ 날개처럼 기다랗다 만든 머리의 장식품. 교(翹)는 높고 긴 날개.
* 금작(金雀)/ 금으로 만든 봉황새 모양의 비녀.
君王掩面救不得(군왕엄면구부득)
황제도 구원할 수 없어 얼굴 가리고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루상화류)
머리 돌려 바라보며 피 눈물만 흘리네.
黃埃散漫風蕭索(황애산만풍소색)
흙먼지는 흩날리고 바람소리 쓸쓸한데
雲棧縈紆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
구름다리 감아 돌아 검각(劍閣)에 올랐구나.
* 검각(劍閣)/ 사천성의 성도(成都) 동쪽에 있는 대검산(大劍山)과 소검산(小劍山) 사이의 험지를 말한다. 나무를 짜서 높다랗게 각도(閣道)를 만들어 놓아서 검각산(劍閣山)이라 한다. 섬서성에서 사천성으로 들어가는데 거쳐야만 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蛾眉山下少人行(아미산하소인행)
아미산(峨眉山) 아래에는 행인도 적은데
旌旗無光日色薄(정기무광일색박)
깃발이 빛을 잃으니 햇살도 흐려진다.
蜀江水碧蜀山靑(촉강수벽촉산청)
촉강(蜀江) 물 짙푸르고 촉산(蜀山) 나무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황제 마음 아침저녁 그리운 정 뿐이로다.
行宮見月傷心色(행궁견월상심색)
행궁(行宮)에서 달을 보니 마음만이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영장단성)
밤비 속의 방울소리 애간장을 끊는다.
天旋地轉回龍馭(천선지전회용어)
하늘 돌고 땅이 돌아 어가(御駕)가 돌아오다
到此躊躇不能去(도차주저불능거)
그 곳에 다다르니 주저하며 못 떠나네.
馬嵬坡下泥土中(마외파하니토중)
마외파(馬嵬坡) 언덕 아래 진흙더미 가운데에
不見玉顔空死處(불견옥안공사처)
옥안(玉顔)은 안 보이고 죽은 자리 비어 있다.
君臣相顧盡沾衣(군신상고진첨의)
군주 신하 돌아보고 눈물 흘러 옷 적시며
東望都門信馬歸(동망도문신마귀)
동쪽 성문 향하여 말에 기대 돌아 왔다.
歸來池苑皆依舊(귀래지원개의구)
돌아오니 못과 동산 모두가 그대로라
太液芙蓉未央柳(태액부용미앙유)
태액지(太液池)엔 연꽃 피고 미앙궁(未央宮) 버드나무 드리웠다.
* 태액(太液) : 태액지(太液池), 한(漢)나라의 궁중(宮中) 있던 연못. 당(唐)나라 때는 장안현(長安縣) 동쪽에 있었음.
* 미앙(未央) : 한(漢) 나라 때의 궁(宮) 이름, 장안현(長安縣) 서북쪽에 있었으며, 당(唐)나라 때는 궁중(宮中)에 두었다.
芙蓉如面柳如眉(부용여면유여미)
연꽃은 얼굴 같고 버들은 눈썹 같아
對此如何不淚垂(대차여하불누수)
이것을 대하자니 어찌 눈물 아니 나랴!
春風桃李開花夜(춘풍도리개화야)
봄바람에 도리화 꽃피는 밤이요
秋雨梧桐葉落時(추우오동엽낙시)
가을비에 오동나무 낙엽 지는 때라.
西宮南苑多秋草(서궁남원다추초)
서 궁과 남쪽 동산 가을 풀만 무성하고
宮葉滿階紅不掃(궁엽만계홍불소)
궁궐에 쌓인 낙엽 쓰는 사람 없구나!
梨園弟子白髮新(이원제자백발신)
이원(梨園)의 악사들은 흰머리가 새로 나고
* 이원(梨園)/ 궁중(宮中)의 음악소(音樂所).현종(玄宗)은 악사 (樂士)수백 명에게 악곡(樂曲)을 가르치고, 이들을 이원제자(梨園弟子)라 하였다. 뒤에 배우(俳優)를 이원제자(梨園弟子)라 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椒房阿監靑娥老(초방아감청아노)
초방의 아감들은 청춘 모습 늙었구나.
* 초방(椒房)/ 황후(皇后)의 궁전. 벽에 산초(山椒)를 발라서 사기(邪氣)를 없애고 온기(溫氣)를 보유케 했다.
* 아감(阿監)/ 여관(女官)의 감리(監理)를 맡은 여자. 중감여사(中 監女史)라고 했다.
* 청아(靑娥)/ 젊은 미녀(美女). 청(靑)은 춘색(春色) 청춘(靑春), 아(娥)는 미녀(美女).
夕殿螢飛思悄然(석전형비사초연)
저녁 궁전 반딧불 나니 그리움에 서러운데
孤燈挑盡未成眠(고등도진미성면)
등잔 심지 다 타도록 아직 잠을 못 이룬다.
遲遲鍾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더디 치는 쇠북소리 초가을 긴긴 밤도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반짝이는 은하가 새벽하늘을 밝히려 하네.
鴛鴦瓦冷霜華重(원앙와냉상화중)
원앙기와 차가우니 서리꽃이 짙게 핀 밤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비취 금침 차가우니 뉘와 함께 장을 잘까?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생과 사를 달리하여 지나간 해 아득한데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내입몽)
혼백마저 꿈에나마 보이지를 않는구나!
臨邛道士鴻都客(임공도사홍도객)
임공(臨邛) 도사 홍도객(鴻都客)은
* 임공(臨邛)/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공래현(邛郲縣) 경내의 고을.
* 도사(道士)/도교(道敎)의 수업자(修業者), 방술(方術-神仙術)을 행함으로 방사(方士)라고도 한다.
* 홍도객(鴻都客)/ 한(漢)의 궁성(宮城) 홍도문(鴻都門) 안에 장서실(藏書室)이 있었는데 여기에 홍도문(鴻都門) 학사(學士)를 두었다. 홍도객(鴻都客)은 여기에 객(客)으로 있던 도사(道士)를 말한 것.
能以精神致魂魄(능이정신치혼백)
정성을 들이면 혼백을 부를 수 있다 하면서,
爲感君王展轉思(위감군왕전전사)
생각에 뒤척이며 잠 못 자는 군왕 감동위해
遂敎方士殷勤覓(수교방사은근멱)
드디어 방사(方士) 시켜 그녀를 찾게 했다.
排風馭氣奔如電(배풍어기분여전)
바람 밀고 구름 몰아 번개같이 내달아서
升天入地求之徧(승천입지구지편)
하늘 땅 오르내려 두루 두루 찾았는데
上窮碧落下黃泉(상궁벽락하황천)
위로는 하늘 끝 아래로는 황천(黃泉)까지
兩處茫茫皆不見(양처망망개불견)
두 곳 다 망망(茫茫)하여 아무 것도 안 보인다.
忽聞海上有仙山(홀문해상유선산)
문득 들으니 바다 위에 신선산(仙山)이 있다는데
山在虛無縹緲間(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허무하고 아득한 사이에 있단다.
樓殿玲瓏五雲起(누전영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 일어나니
其中綽約多仙子(기중탁약다선자)
그 속에는 아름다운 선녀들이 많다 하네.
中有一人字玉眞(중유일인자옥진)
그 중에 한 선녀가 이름 하여 옥진(玉眞)이라
雪膚花貌參差是(설부화모참차시)
눈 같은 살결과 꽃 같은 얼굴이 필시 귀비를 닮았다고!
金闕西廂叩玉扃(금궐서상고옥경)
금 대궐 서쪽 행랑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
소옥(小玉)을 시켜 쌍성(雙成)에게 알리게 했다.
* 소옥(小玉)/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여인. 선궁(仙宮)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여인을 말한다.
* 쌍성(雙成)/서왕모(西王母)의 시녀(侍女). 여기서는 옥진(玉眞)의 시녀(侍女)를 말한다.
聞道漢家天子使(문도한가천자사)
한 천자가 사자를 보내왔단 전갈 듣고
九華帳裏夢魂驚(구화장리몽혼경)
구화장 장막 속에 꿈꾸던 혼 놀랐구나.
擥衣推枕起徘徊(남의추침기배회)
옷을 잡고 베개 치우고, 일어나 배회하더니
珠箔銀屛邐迤開(주박은병이이개)
구슬발과 은 병풍이 뒤따라 열리누나.
雲鬢半偏新睡覺(운빈반편신수각)
금방 깨어 구름 같은 머리 한쪽 기운 체
花冠不整下堂來(화관부정하당래)
화관(花冠)도 정돈 않고 당(堂) 아래로 내려온다.
風吹仙袂飄飄擧(풍취선몌표표거)
바람결에 나부끼는 선녀의 옷자락은
猶似霓裳羽衣舞(유사예상우의무)
예상우의곡에 맞춰 추는 춤인 것 같더라!
玉容寂寞淚闌干(옥용적막누난간)
옥 같은 얼굴에 수심 겨워 눈물 지우니
梨花一枝春帶雨(이화일지춘대우)
배꽃 한 가지가 봄비 머금은 것 같네.
含情凝睇謝君王(함정응제사군왕)
정겨운 곁눈질로 군왕에게 감사하며
一別音容兩渺茫(일별음용양묘망)
이별하고 소리 얼굴, 듣고 본지 아득하오.
昭陽殿裏恩愛絶(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昭陽殿)의 은혜와 사랑도 끊기고
* 소양전(昭陽殿)/ 양귀비(楊貴妃)가 생전에 있던 궁전(宮殿). 본래 한(漢)의 성제(成帝) 때에 조비연(趙飛燕)의 동생 소의(昭儀)가 있던 궁전(宮殿)을 소양전(昭陽殿)이라 하였는데, 후에 잘못 전하여, 총희(寵姬) 조비연(趙飛燕)의 궁(宮)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蓬萊宮中日月長(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蓬萊宮)서 지낸 세월 오래되었나이다.
* 봉래궁(蓬萊宮)/ 선궁(仙宮)의 이름. 봉래선산(蓬萊仙山)의 궁(宮)이란 뜻, 동해(東海) 바다 가운데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의 세 선산(仙山)이 있다고 전한다.
回頭下望人寰處(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아래로 인간 세상 보노라면
不見長安見塵霧(불견장안견진무)
장안(長安)은 안보이고 먼지와 구름만 보였다오.
唯將舊物表深情(유장구물표심정)
옛 물건을 보내어 깊은 정을 표하고자
鈿合金釵寄將去(전합금채기장거)
향합과 금비녀를 부쳐 보냅니다.
* 전합(鈿合)/ 청패(靑貝) 세공(細工)의 향합(香盒).
* 금채(金釵) : 금으로 만든 비녀.
釵留一股合一扇(채류일고합일선)
금비녀는 한 가락, 향합은 한쪽을 남기니
釵擘黃金合分鈿(채벽황금합분전)
금비녀는 황금이 갈라지고, 향합은 자개가 떨어졌소!
但令心似金鈿堅(단령심사금전견)
금비녀와 자개처럼 마음만 굳으시면
天上人間會相見(천상인간회상견)
천상(天上)과 인간에서 만나 볼 수 있으리다.
臨別殷勤重寄詞(임별은근중기사)
이별에 임하여서 은근한 말 거듭 하니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말 가운데 맹세 있음 두 마음이 알리로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그 옛날 7월 7석 장생전(長生殿)에서
* 장생전(長生殿)/ 화청궁(華淸宮) 안에 있던 신전(神殿)의 이름.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야밤에 둘이서 속삭일 때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공중 나는 새라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 비익조(比翼鳥)/ 암수가 다 눈이 하나 날개가 하나인 새. 늘 날개를 나란히 하고 난다하여 부부의 금슬이 좋음을 이르는 말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 있는 나무라면 연리지(連理枝)되기 바랐소.
* 연리지(連理枝)/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 나뭇결이 통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상사수(相思樹)라고도 한다. 부부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 할 때 나오는 말이다. 어원은 송나라의 마지막 왕 폭군 언(偃) 때 그의 무도한 행위로인하여 죽은 한빙(韓凭)과 그의 처 식씨(息氏)가 묻힌 각각의 무덤에서 가래나무가 자라 그 가지가 서로 합해졌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천지는 유구(攸久)해도 다 할 때가 있겠지만
* 천장지구(天長地久)/노자 도덕경 제7장의 제목이다.
하늘도 영원하고 땅도 영원하거니와, 하늘과 땅이 능히 영원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몸을 뒤에 두어도 몸이 앞에 나서게 되고, 몸을 버려도 살아남게 되거니와, 이는 그 사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품은 한(恨)은 면면(綿綿)하여 끊일 날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