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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일일묵 제 366신-한남정맥 3차구간

정자 솔 2013. 4. 2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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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南正脈三次區間縱走(한남정맥삼차구간종주)♣♡* 
 
 한남정맥 제 3차 구간을 종주하고

負兒咸朴石城山:부아함박석성산
山脈人侵毁數間:산맥인침훼수간
大廈市街妨進路:대하시가방진로
廣途鐵柵害求閒:광도철책해구한
聊吹風籟時時奏:료취풍뢰시시주
幸發鵑花點點斑:행발견화점점반
春意自生延浩氣:춘의자생연호기
長程不拘日中還:장정불구일중환
부아산, 함박과 석성산이 이었는데
사람들이 침범하여 여기저기 맥 끊겼네.
큰 빌딩과 시가지가 진로를 방해하고
넓은 길 철책들이 편히 감을 해치누나.
그나마 바람 운치 때때로 연주하고
다행히 진달래가 점점 피어 무늬 짓네.
봄 마음이 절로 일어 호연기로 이어짐에
머나먼 일정에도 한낮 때에 돌아온다.
     2013. 4. 21.


 *♡♣ 한남정맥 제 3차구간 종주를 하고♣♡* 

 무너미고개-함박산-부아산-43국도-멱조고개-석성산-
아차지고개-양고개(27번도)    (30.5Km)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무박이기는 하나 자정을 넘기면서 출발을 했으니 당일이라고 하겠다. 비몽사몽간에 
새벽 5시 경에 산행 들머리에 도착한다. 눈먼 망아지 방울소리만 듣고 따라가듯이 
앞사람 불빛만 보고 따라붙는다. 안개가 자욱하여 불빛마저 희미하다. 
약 10분가량 오르니 어둠 속에 묘지가 나서고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어둠길을
 더듬어 올라 5시 30분에 함박산에 선다. 경기도 용인시 역삼동, 이동면에 위치 한 
이 함박산(咸朴山 349m)은 명지대학 뒷산으로 무너미고개까지 물이 넘쳐 이 일대
 봉우리가 모두 물에 잠기고 이 산 봉우리만 함지박만큼 남았다 하여 함박산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이북 실향민이 조성한 망향의 대성동산인 공동묘지가 있다.
 날이 밝아와 불을 끄고 공동묘지 위를 지나 6시 30분에 부아산에 도찯한다. 
경기 용인시 역삼동에 위치하며 어린이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부아산(負兒山 402.7m)이라 이름 했단다. 백제 시조 온조가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이산에 올라 백제의 도읍지를 논의했다는 전설 때문에 산 아래 마을 이름이 
궁촌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마을 내에 군에 관계된 집안이 몇 대 살았다 
하여 궁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단다.
6시 48분에 도로 하나를 건 설치된 계단을 올라 진행하는데 여기서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이제 한창이다. 7시 30분에 6차선 국도 중앙분리대를 타넘어 주유소 
뒤편으로 된비알을 기어오른다. 능선에 올라 아침을 먹고는 8시 5분에 선두를 
뒤따라 나선다. 곧 4차선 도로에 내려 인도를 따르다가 다시 언덕에 올라 공사장 
옆을 지나 산으로 접어든다. 석성산 정상 길을 통신시설이 가로막고 있어 도로
 내려 통화 사 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올라 석성산 정상에 올라서니 9시 30분이다. 
용인시에서 10번째 높은 산으로 성산, 구성산, 보개산으로도 부르는 높이 472m의
 석성산(石城山)은 영동고속도로의 마성터널이 뚫려 있으며, 산 북쪽 능선 
끝에는 마성톨게이트가 있고 그 뒤쪽으로 에버랜드가 펼쳐져 있다. 
동쪽은 경사가 완만한데 견줘, 서쪽인 기흥구 동백동 쪽은 산세가 가파르고 거대한 
경사면의 큰 암벽을 이루며, 남쪽이나 북쪽에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을 나타낸다. 
산세가 육중하고 아름다우며 갖가지 기암괴석과 약수, 여러 전통사찰 등이 
어우러져 있고 용인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시민들의 즐겨 찾는 곳이 된다. 
산 서쪽 사면의 통화사 주위에는 자연석성(보개산성)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데, 
축성연대는 475년경이며 길이는 약 2km이다. 석성은 험악한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로서 경사가 완만한 동쪽에만 반원형으로 남아 있다. 
쉼터에서 아우들이 막걸리 한잔을 권하기에 받아 마시니 신선주가 따로 없다. 
10시에 고속도로 인터 첸지에 내려 잠깐 휴식을 취하고는 눈치껏 도로를 
가로질러 산에 오른다. 10여분을 오르니 할미산성이 나오는데 돌들이 모두 흰색을 
띠고 있어 특이하다. 할미산성은 성 내부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길이 180m의 공유 
벽을 기준으로 북쪽의 내성, 남쪽의 외성으로 구분된다. 북쪽의 내성은 정상부를 
포함한 높은 지대에 축조되었고, 남쪽의 외성은 비교적 낮은 지대에 조성되었는데,
 형태상 사모형(紗帽形)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51m로, 할미산의 정상부와 
그 남쪽의 능선을 둘러싸며 협축하였고, 내·외벽 기저부에서 보축이 확인되었다. 
최정상부에서 매납 유구와 아궁이, 평지에서 적심석이 나왔으며, 수구지와 토광 
등이 조사되었다. 할미산성은 조선 후기에 간행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에는 ‘폐성(廢城)된 고모성(姑母城)’이라 기록되었다. 
이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고려시대 한 노파가 
하룻밤에 쌓았다”라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어 오랫동안 고려시대의 성곽으로 
이해되어 오다가 1999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통해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을 대량 발굴했다는 보고를 하면서 
학계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경기도박물관의 시굴 조사를 통해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축조된 순수 신라 석축 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성벽 윗면이 붕괴되었으나 원형은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다.
2012년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은 용인시 의뢰로 할미산성 
중 남쪽 성벽 구간에 대한 1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성벽 축조방법이 전형적인 
초기 신라 시대 특징을 보이고, 다른 무엇보다 출토유물이 6세기 중반-7세기 중반
 무렵 신라 시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10시42분에 6.25 전사자 유골 발굴기념지역을 통과하여 10시 20분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 걸어 11시에 시가지로 들어서는 조형 터널을 지난다. 도로 위 다리를 
건너 ‘그루터기’ 식당에서 좌회전하여 국도와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를 이어 지나 
묘소가 있는 언덕에서 배낭을 털어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때시각 11시 20분.
  마을이 정맥 길을 차지하고 있어 우회하여 가구단지를 지나 도로를 건너올라 
12시 10분에 주민들 산책로 같은 야트막한 산을 지나는데 
무년산(無年山)이라 적어놓았다. 
약수터를 지나 아파트사이로 나있는 길을 돌아 이종명 산태장이 사는 
아이스케이크로 갈증을 풀며 아파트 사이를 통과하여 시가지에 들어서니 
자동차문전면허시헙장 문앞 골목에 버스가 기다린다. 시계는 오후 1시가 되어간다. 
10시간 코스가 8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강행군이 된 셈이다.
 주위에 주인도 없는 세차장이 있어 몸까지 말끔히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영덕 팀이 준비해온 미주구리 회 맛까지 보태져서 건배제의 외침이 시가지를 
떠나게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까지 이어져 잠깐이나마 
가무음주 엄금 전통도 깨트려버리고 만다. 
   松亭(정자 솔) 朴載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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