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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낙동정맥 제 22차 종주를 마치고

정자 솔 2007. 8. 31. 16:54


        洛東正脈二十二次縱 
      -낙동정맥 제 22차 종주-  

千聖山連鼎足山(천성산연정족산):천성 산이 정족산과 이 구간에 이어있어
蒸炎遠路步行艱(증염원로보행간):찌는 더위 먼 길이라 걸어가기 어렵구나.
公園墓苑自然毁(공원묘원자연훼):공원 묘원  땅 파헤쳐 자연을 훼손했고
通度球場環境刪(통도구장환경산):골프장 설치하며 환경을 잘라 냈다.
流汗沾衣尤難進(유한첨의우난진):흐른 땀에 옷이 젖어 더욱 진행 어려운데
遲笻揷地不易攀(지공삽지불이반):더딘 지팡이 땅에 꽂혀 등반함이 쉽지 않다.
只在綠陰寒蟬語(지재녹음한선어):다만 녹음 욱어지고 매미 소리 시원하여
辛中有樂苦中閒(신중유락고중한):매서운 중 낙이 있고 고통 속에 한가하네!
              2007. 8. 26.   松亭 朴載鎬   

     낙동정맥 제22차 종주를 마치고 

2007년 8월 26일 일요일. 마루금 산악회 낙동정맥 제22차 종주일 이자 나의 체력 한계 실험일이기도 하다. 
어제 한림산수회의 충북 대성산 700고지를, 그것도 중도에서 가도오도 못하겠다는 부인들의 가방까지 받아
 겹쳐 메고 뙤약볕 속에서 올랐던 터라 만만찮은 오늘 구간(18.7km)이 마음에 걸려 충분하게 물을 준비하고,
 중국에서 이 상권 후배로부터 선물 받은 북한산 우황청심환도 미리 복용을 하고 나왔다. 버스는 도착했는
데 최종헌 교수가 나오지 않아 어제 산행 때 산은 오르지 않고 술만 잔뜩 취해있던 모습이 떠올라 전화를 
하니 이제 나선다고 한다.
함께 타고 시가지를 지나면서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싣고 하여 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더운 날씨에도 올 사
람은 다 와 있다.
  6시가 조금 지나면서 출발하여 언양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는(7시 13분)지난달에 내린 지경고개에 도착하니
 7시 30분이다. 준비를 마치고 곧 종주가 시작된다. 다른 구간과는 달리 처음 출발은 완만하게 진행이 된다. 
  얼마를 걷지 않았는데 앞이 트이고 ‘통도 컨트리클럽’골프장에 들어선다. 골프 치는데 방해가 되지 않
게 한데 모여 빨리 통과해야 된다고 하며 지나가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나며 되돌아오란다. 한동안을 실랑이
를 벌린 뒤에 끝내 통과는 할 수 있었으나 마음들이 편치 않다. 설사 골프장 설치를 허락해 준다 하더라도
 정맥 길만은 살려놓는 정책적 배려가 선행 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골프장이 얼마나 넓은지 경내를 
벗어나 휴식을 취하며 시각을 보니 8시 30분이다. 다시 출발하여 반시간 가량 진행하니 이번에는 
‘솥발산공원묘지’가 나선다. 울릉도에서 본 묘처럼 규모가 작은 묘들이 정상부위 바위 등외에는 
묘들로 가득 찼다. ‘귀신 아파트’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가장자리로 나있는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다가 힘이 들어 쉬고들 있는데 후미부대가 벌써부터 지친 걸음으로 오르기 시작함이
 내려다보인다. 또 장난 끼 오린 표현이 튀어 나온다. ‘패잔병 걸음걸이 같다’ 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데 거의가 포장도로로 오르는데 우리 일부는 숲 속으로 들어가 마루 금을 탔다. 경사
가 심해 힘은 들어도 땅을 밟고 그늘도 있어 기분은 괜찮은 편이다.
 힘겹게 능선에 올라서니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보다 큰 공원묘지다. 여기가 삼덕공원묘지인가 싶다.
 역시 우회전으로 꺾어 마루 금을 탄다. 김원기 등반대장이 다른 길로 먼저와 기다리며 안내한다. 이때 
시각 10시 5분. 사진 한 컷을 담고 부지런히 따라나선다. 5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임도에 내려서고 계속해
서 임도로 오른다. 삼각점이 있는 650고지 바위에 올랐다가 내려 우회하여 진행하니 저만치 우뚝 솟은 바
위를 둘러싸고 사진들을 찍는다. 정족 산 정상이다. 이때 시각 10시 30분. 해발 700M인 이 정족 산(鼎足山)
은 바위가 세 솥발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숲 속 길을 30분가량 내려오니 앞서 온 몇 사람이
 점심 먹을 채비를 한다. 자리를 폈으나 구미가 당기지 않아 얼음 녹은 찬물에 말아서 먹는데 김원기 대장
이 언제 벌써 몸 빠르게 찾아 봤는지 대성 암으로 내려가는 길옆에 물이 있음을 알려준다. 빈 병을 들고 
가서 물을 채웠다. 최 교수가 눈에 뜨이지 않아 물으니 일찍이 탈출했다고 한다. 모두들 식사를 마치고 
단체 촬영을 하고 일어서니 11시 50분,  숲 속 마루금 길을 따라 들어섰는데 얼마 가지 않아 또 임도가
 나선다. 숲길과 임도를 번갈 으기  몇 차례 후 천성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능선의 바위지대가 이어
 지다가 암 봉 높이 치솟은 천성 산 정상이다. 바위산을 바로 진행 할 수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가방을 
두고 올랐다가 되돌아오는 통에 이 상엽 조합장과 같이 선두 그룹에서 후미가 되고 만다. 돌아와 밧줄을 
잡고 정상에 오르니 최상은 등이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 달란다. 시각은 14시를 넘기고 있다. 두어 차례 
여기를 올라 사진을 찍은 것이 있었기에 이 조합장과 함께 기념만 담는다.  천성 산(千聖山 922M)은 양산
 시 상북 면, 하북 면, 웅상 읍에 걸쳐있는 천성산은 원래 원효 산이라 불리던 곳으로 양산시지명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립지리원이 산 이름을 변경하였는데 그 변경의 취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원효 대사가 수도한 곳이라 하여 국방부지리연구소에서 1961.4.22자 로 원효 산으로 고시하였고,
 또한 원효 산으로 각종 지도상에 표기 관리하여 왔으나,
- 동국여지승람 양산군편에 의하면 
圓寂山 -> 左郡地理 二十一云 千聖山 一云 小金剛山으로 고증되어 있고, 
- 또한 "양산군 내 고장 전통"편 (83년 발행)에 의하면 지금부터 1300년 전 원효 대사가 화엄 벌(현 원효산
 정상부근)에다 집을 짓고 천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자신 또한 공부 하였다하여 천성 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는 근거가 있으며, 
- 관내 초. 중. 고교 교가 등 가사 첫머리에 천성 산을 소재로 하여 불리어 지고 있는점 등을 감안하여 
`99.12.9 양산시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원효산을 천성 산으로 지명 변경하게 되었으며 정족산 아래 
마루 금을 약간 비켜선 평원지대에는 생성 된지 약 6천년 정도 되었다는 무제치늪이, 천성산 아래의 화엄
 벌에서도 화엄 늪이라는 생태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고산 늪이 95년과 99년에 각각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제치늪의 경우 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98.12.31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이 늪은 자연생태계의 변천과정, 습지동식물의 서식변화, 기후 변천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자산이라 하겠는데, 고속전철 터널을 뚫고 있어, 생태계 보존을 주장하며 단식 투쟁한 지율 
스님으로 해서 천성 산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종전에 천성 산이라 불리던 812M 높이의 아름다운 바위봉우리는 이제 천성2봉이라는 이름을 얻어 눈앞에 
서서 포즈를 취해준다. 
  아무리 바빠도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대로 지나가랴. 하물며 정용도 후미대장이 기다려 주겠다고도
하는데…….  버티고 선채로 가곡 ‘봉황대상’을 냅다 지르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다. 무릎 보호대를 끼
고는 지난 가을에 통과했던 길이라 눈에도 익어 속도를 내어본다. 그래도 기록은 남겨야 하기에 사진을 
찍으랴 시간을 적으랴 마지막 오르는 억새밭 사이길이 땀깨나 흘리게 한다.
  14시 50분에 원효 봉(천성산 제1봉)을 왼쪽으로 비켜서며 숲길을 얼마간 내려서니 군사시설 진입 도로
에 나선다.(15시 15분) 몇 해 전 벼락을 맞은 바위가 이상하게 부처모양이 되었다는 숲 속에 솟아있는 
원효암과 바위를 바라만 보고 안내 표시 방향대로 뛰어내리다 시피 걷는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접속구간 
길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흐르는 물길이 보이기에 이 조합장과 발이나 씻고 가자고 내려섰는데 발을 
담그고 나니 그냥 물 속에 앉게 되고 만다. 그냥은 올 수 없어 가방에서 옷을 꺼내 바꿔 입으니 ‘알 탕’
을 한 셈이 되었다. 부랴부랴 챙겨 도착하니 16시 20분, 정 왕락 후배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뒤에 처지
는 덕에 그리고 발이라도 씻겠다고 물을 찾다 뒤늦게들 내려오는 데서 꼴 치는 면했다고나 할까? 
  언제나 그러했듯 푸짐한 하산 주 자리, 시원한 맥주 세 컵을 들이 키고, 뻑뻑한 삼계탕 한 사발을 먹고 
나니 식곤증이 나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운동장에 도착하여 갈 때와는 역순으로 내린 뒤에 마지막에 하차하여 집에 도착하니 19시가 가깝다. 이렇
게 해서 오늘도 체력한계 실험을 성공리에 마친 것이다. 
출처 : 정자 솔
글쓴이 : 정자 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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