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6)白頭大幹八次區間縱走 ♣♡ *
(백두대간 8차 종주를 하고 -10. 26)
高南山勢獨高天:고남산세독고천
史蹟風光特異然:사적풍광특이연
李將禱神倭寇逐:이장도신왜구축
鶴師占卜里名宣:학사점복리명선
楓巒疊疊成圖畵:풍만첩첩성도화
囀鳥遙遙作管絃:전조요요작관현
日朗氣淸秋意好:일랑기청추의호
長途百里足輕遷:장도백리족경천
고남 산 산의 기세 홀로 하늘 높아있고
역사 자취, 경치들이 특이함이 있음이라.
이성계 신에 빌어 왜구를 물리쳤고
무학 대사 점을 쳐서 마을 이름 베풀었다.
단풍 산들 첩첩 둘러 살아있는 그림이요
새 소리 간드러져 관현악을 짓는구나.
햇빛 밝고 공기 맑아 가을 기분 좋은지라
백리 길 긴 여정도 발 가벼이 옮겨진다.
* ♡♣(627)主屹山登攀(주흘산을 등반하고 - 10. 27)♣♡ *
屹屹掀天主屹山:흘흘흔천주흘산
靈峰靈氣亘三關:영봉영기긍삼관
千尋絶壁楓光繡:천심절벽풍광수
萬里長空雁陣還:만리장공안진환
大闕址泉蒼蘚裏:대궐지천창선리
女宮瀑布紫霞間:여궁폭포자하간
翰林陟降秋涼際:한림척강추량제
何不吟詩孰不閒:하불음시숙불한
높고 높아 하늘 흔들 주흘산 솟아있고
영봉의 신령 기운 삼 관문에 뻗쳤어라.
천길 높이 절벽에는 단풍 빛이 수를 놓고
만 리 먼 공중에는 기러기 진 쳐나네.
대궐 터 샘물 흘러 푸른 이끼 속을 들고
붉은 노을 빛 받으며 여궁 폭포 물살 난다.
서늘한 가을날에 글 객 되어 오르내리며
어찌 읊지 않겠으며 뉘 아니 청한하랴!
* ♡♣(628)添豆白米餠(콩 섞은 흰쌀 떡 -10. 28)♣♡ *
粉餌間間黑豆三:분이간간흑두삼
色佳味美又香含:색가미미우향함
會員夫婦提供事:회원부부제공사
加誼添情是益甘:가의첨정시익감
흰쌀 떡 사이사이 검은 콩 두세 알
색도 곱고 맛도 좋고 또 향기 머금었네.
회원 부부 마음 합해 제공하는 일인지라
우정을 보탰기에 맛 더욱 달싹하네!
백두대간 제 8차 구간 종주를 하고
2008년 10월 26일 일요일. 호산자율 가이드 백두대간 제 8차 종주일이다.
바로 어제인 토요일에, 창립에서부터 10여년을 관리해 왔던 한림산수회가
가진 주흘산과 영봉 산행을 하고 술 마시며 뛰고 온 터라, 3시에 맞춰놓은
모닝콜에도 바로 일어나지지 않는다. 미리부터 준비 해둔대로 챙겨 나서
니 며칠 전 비가 내린 뒤라 바람이 불고 새벽 공기가 차다. 여느 때처럼
승용차를 몰고 연하 재 너머에 도착하니 주차하던 자리를 막아놓고 있다.
길 가에 차를 세우면서 잠깐 야속한 생각이 들었으나 ‘쓰레기를 마구 버
리고 간다.’고 하던 주인 말이 생각나서 마음을 고쳐먹는다.
버스가 도착하고 가면서 경주 기계 팀이 차에 오르고, 날이 밝아 오면
서 거창 휴게소에 들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사랑스런 여우’ 부부가
협찬한 백설기와 하 회장의 부침개, 건네주는 전복죽까지 고루하여 배를
채웠다. 마루금의 낙동정맥 종주 시에도 그러했듯 언제나 보태주는 남창우
후배의 깡 커피까지 까지 마시면서…….
7시 50분경에 낮 익은 여원 재 운성대장군이 맞아주고 곧 이어 산행이
시작된다. 오름길이 이어지고 어느새 여기저기서 껴입었던 옷을 벗는다.
선두 그룹에 끼어 올라가려니 힘에 부친다. 어제 무리한 탓이려니 하고 생
각하는데, 뒤에 서들 너무 빨리 간다고 아우성인 걸로 보아 나 뿐만은
아닌 것 같다.
김해 김공 묘소에 이르니 일부가 쉬고 있는데 이 때 시각 9시 4분, 한
시간이 넘게 걸은 셈이나, 쉴 틈도 없이 또 따라 오른다. 가파른 암릉이
힘들게 하더니 시야가 확 티이면서 정상을 알리는 표지대가 서 있고
‘맥가이버’가 잡고 서서 같이 사진을 찍잔다. 해발 846. 4m의 고남산
정상이다. 이 고남산((高南山 846.4m 남원시 산동면 운봉읍)은 이번 구간
에서 주된 산으로 남동쪽의 물줄기는 광천을 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북서쪽은 요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합수된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산동면
중절 리·운봉읍에 위치해 있다.
남원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면 운봉 여원 재에서 북쪽 끝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이산이다. 그리고 남원에서 88고속도로를 달리다 지리산휴
게소 중간쯤이나 남원에서 운봉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정상 부근에 거대한
중계 탑이 서 있는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 산은 또 운봉평야에 우
뚝 솟아올라서 예부터 전쟁터와 격전지의 방어선이 되곤 했다. 지역 주민
들은 고남산을 태조봉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고려말 우왕 6년(1380)에 왜구 2천명을 이끌고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무학 대사와 변안렬을 참모로 삼고,
퉁두란을 아장으로 삼아 1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양을 출발하여 전주
한벽당에 잠시 쉬었다가 대오를 정비한 뒤, 남원에 도착하였다. 이때 멀
리 운봉 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제단을 쌓
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 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계하고 3일간의 산신제를
올려 천지신명께 승리를 기원하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였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에서 출발할 때 애첩이 조
선 황산의 산신이 크게 노하여 불길하다 하여 출정을 만류하였으나 애첩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출전을 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아지발도
가 황산에서 죄 값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뒤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국한 뒤, 이 산의 이름을 태조봉 또는 제
왕봉으로 불렀다. 고남산 아래에 주둔할 때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
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마을은 권세가 하늘에 닿도록 끊임이 없다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그리고 여원재에서 고남산 초입에 있는 마을의 지형을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지형을 살펴보니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까지 뻗어 내린 모
양이 마치 긴 다리를 놓은 것 같아 '장교리(長橋里)'라 지었고 이씨와 김씨
가 번성할 것으로 예언했는데 오늘날 이씨와 김씨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오른 쪽으로 내려다보이는 평야가 황산벌이라고도 이른다. 중계탑이
바라다 보이는 쪽으로 내리니 남원시에서 세워 둔 커다란 안내 석이 서 있
고 뒤편에는 백두대간을 표시한 우리나라 지도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들
사진을 찍고 상봉 식을 가졌는데 시각이 9시 반 전후가 된다.
다시 출발하여 내리니 중계소 오르는 도로가 나서고 곧 이어 숲 속으로
나있는 등산로로 진입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에 내려서고, 유치 재를
지나 산을 올라 삼각점을 지나(10시 42분) 다시 내리니 좁은 길을 사이하
여 양 쪽으로 밭이 있고 저 아래로 축사도 보인다. 내리던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길 어느 쪽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담기는 강의 이름이 달라진다고 생
각하니 흔하게 다니는 길이건만 유심히 살펴진다. 곧 이어 고갯길이 나서
고 마을에 들어선다. 교회 첨탑만 바라보고 마을 안으로 들어오라던 하 회
장의 당부가 생각난다. 담벼락에 시그널들이 심심찮게 붙어있어 떼버리지
않고 그냥 두는 주민들이 고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 회관에 매요마
을이라 쓰여 있는데 그 뜻이 가늠되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아 서는데 나무
에 온통 시그널로 장식이 되어 있고 건물에는 매요휴게실이라 했는데 등반
대장이 막걸리 한잔을 건네준다. 목이 말라도 뒤지기 싫어서 참고 왔던 바
라 이 한잔 막걸리가 그리 맛날 수가 없다. 이때 시각 11시 5분이다.
여기서부터는 한동안 아스팔트 포장 도로를 걷는데 해발 420m의 유치 삼
거리가 나오고 삼거리를 조금 지나서 다시 숲속을 진입한다. 한참을 오르
다보니 허기증도 나고 목도 말라 이 조합장과 과일과 가져간 호박 부침개를
나눠 먹고 있느니 속속 올라와 같이 쉰다. 다시 진행하여 얼마를 가니 점
심들을 먹고 있다. 우리도 전을 편다. 조금 전에 먹은 것이 있어 끓여온 숭
늉에 밥을 조금 말아 먹고 나면 국물을 얻어 마시는 것으로 점심을 때운다.
선두가 일어서기에 따라 일어선다. 이때 시각 11시 45분.
12시 7분에 김해 허공 묘소를 지나고 12시 19분에 사치재에 이른다. 여기
서 두 길로 갈라지는데 5년 전에 통과 했다는 하 회장이 오면서 설명하기로
는 바로 가면 88고속도로를 넘어야 하고 돌아가면 육교가 있어 안전은 하나
2km를 더 걸어야 된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가는 길을 택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도로가 나오고 지하 통로가 뚫려 있어 쉽게 통과할 수 있다. 하 회장이
기다리며 통로가 마련되어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굳이 도로를
가로 질러 오며 지하로 통과한 사람들은 다음에 땜빵을 해야 한다고 농담을
건넨다. 여기가 이실 재인 모양이다.
12시 22분이다. 쉴 틈 없이 숲길로 들어선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길
은 가파르고 산불로 타다 남은 나무그루만 남아 있어 그늘이 없으니 햇볕이
따갑다. 12시 37분에 정사에 올라서니 헬기장이 널찍하게 있고 올라서니 지
나온 고남산이 우뚝 솟아 보이고 사방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천왕
봉을 배경 삼아 한 컷 담아본다. 하회장이 하는 말 “저기 솟아 있는 고남산
에서 형님 시조 한 수 읊어야 되는데” 한다. 마지막 올라야 하는 봉우리를
향해 저만치들 내닫고 있어 따라나선다. 키 넘는 억새밭을 헤치며 오르는데
뒤에 따르던 한사람이 “산이 참 아름답습니다.”고 하니 남창우 후배가
받아서 “산도 아름답지만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이 더 아름답지요.” 한다.
그렇다 아무리 금수강산이라 하더라도 그를 보고 즐길 줄 아는 인간이 없다
면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나 무엇이 다르랴! 먼저 오른 젊은 이 하나가 우뚝
선 바위에 올라 앉아 더욱 아름다움을 보탠다. 마음속으로 저기 올라 앉아
창 한 가락을 불러야지 하면서 올라보니 바람이 너무 세차서 사진만 담고 다
시 오를 수밖에…….
고만고만한 두 봉우리를 오른 후 내려가는데 접속구간이 애매해 망설이다가
진행하니 삼사래 길이 나서고 하산할 임도가 보인다. 새맥이 재가 여긴가 보다.
13시 25분이다. 따라내려 당동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13시 50분. 고속도로 지
하도 앞에 주차를 해 두고 배 기사께서 마중을 한다. 이 때 반 정도가 하산
을 하고 있다. 모두 하산하기를 기다렸어도 해가 중천에 있어 차가 밀리기
전에 빠져나와 와촌 휴게소에서 하산 주를 먹기로 하고 14시 30분경에 당동마
을을 뒤로 하고 출발을 한다. 16시 40분에 휴게소에 닿았으나 날씨가 싸늘해
두세 잔 들이키던 맥주를 한 잔도 억지로 마실 지경이다. 5시 15분에 차에
올라 일찍 집에 들 수 있었다. 오늘 같은 산행 거리를, 오늘 같은 보속으로
진행한다면 굳이 새벽같이 출발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한 무리 때문에 걱정 되었던 몸 사정이 다리는 좀 뻐근해도 별 탈 없
이 해낼 수 있었음에 안도의 숨을 내쉬어 본다.
일일일수 제 206 신
松亭(정자 솔) 朴載鎬 鎬朴印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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