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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幹第卅二次縱走(대간제삽이차종주)
靑玉頭陀上月山:청옥두타상월산
紅塵世外秘仙寰:홍진세외비선환
武陵溪谷祥雲海:무릉계곡상운해
高積臺巖白雪斑:고적대암백설반
新竹嶝尖仍苦陟:신죽등첨잉고척
木通嶺滑使難攀:목통령활사난반
長途三舍長時走:장도삼사장시주
克己怡心笑破顔:극기이심소파안
청옥산, 두타산과 상월 산이 이어있어
홍진세상 밖에다가 신석세계 감춰놨네.
무릉계곡 상서로운 구름바다 이루었고
고적대 바위에는 흰 눈이 무늬 졌다.
새 댓 등 뾰족 솟아 올라가기 힘들었고
목통 령 미끄러워 등반하기 어렵구나.
100리길 간 거리를 장시간 달렸으나
나를 이긴 마음 기뻐 웃음으로 얼굴 찢네.
대간 제 32차 댓재, 백복령 구간 종주를 마치고
백복령(03:20)-원방재(05:45)-상월산(06:37)-이기령(06:58)아침식사(08:30)
-고적대삼거리(09:40)-고적대(10:11)-연칠성령(10:41)-청옥산(11:18)상봉식
-박달재-두타산(13:06)-통골재(14:00) -햇댓등(15:24) -댓재(15:38).
31.5km 12시간 20분소요.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백두대간 종주일이다. 이날 종주 구간이 원래는 계획 되어
있었으나, 지난주에 땜빵 팀들이 폭설로 해서 고생들을 너무했기에, 32차의 백복령에
서 댓재 구간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멀고 힘든 구간이라 33차 구간과 바꾸어
계획을 잡고 토요일 저녁 11시에 출발을 하게 된다. 도로사정이 좋아진 지금이라
백봉 령에 도착했어도 2시 반밖에 되지 않았다. 18km의 거리라면 이 산에 올랐을 때
거의 반은 밤중에 걷게 될 지경이라 버스 안에서 더 자고 가자는 말까지 나왔으나,
눈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으니 북진할 것이 아니라 원래
계획대로 남진으로 32구간을 종주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져서
3시 20분경에 곧 산행이 시작된다.
백복령의 본뜻은 소나무뿌리에 기생하는 한약재를 복령이라 부르는데, 이곳에 소나
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 탓에 백복령(780m)이라 부르지 않나 추측을 해본다.
대간 동쪽의 백복령 고갯길은 중턱에서 한줄기는 옥계로 가고, 또 한줄기는 동해와 삼
척으로 간다. 옥계 길은 남면치라는 이름으로 해안으로 떨어지고, 삼척 길은 유명한
무릉계곡의 들물을 지나 동해안을 달리는 7번 국도에서 동해시와 삼척시를 남북으로
가른다. 서쪽으로 내려가면 정선군 임계면과 연결되는 42번 국도에 많은 차량들이
넘고 있지만, 그 옛날 보부상들이 삼척의 소금을 얻기 위해 넘나들던 곳으로 지금도
정선아리랑의 가락 속에 그 애환이 남아있다고 한다.
예비 배터리가 있는데도 갈아 끼우지 않아서 랜턴 불이 어두워 앞뒤 불빛에 의지해
진행하다보니 따라가기 바쁘다.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선 1,022봉은 군락을 이룬 아름
드리 소나무 숲 속을 지나 원방 재(730m)로 떨어진다. 이때 시각 5시 40분. 겉옷을 벗
어 넣고 모자도 벗은 체 980m의 상월 봉에 오르니 6시 37분이나 아직도 주위는 어둡다.
6시 58분에 이기령에 도착하니 임도와 만나게 되고 도로를 따라 150m 거리에 우물이
있다고는 하나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조금 쉬고는 다시 임도좌측의 소나무 밭으로
들어서니 돌을 정성스럽게 깔아 길을 만들어 놓았다. 완만한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8시 30분을 전후하여 아침을 먹는다. 여기서부터는 아이젠을 차고 9시에
갈미봉(1,260m)을 지나고 부터는 완만하던 산세에 기암절벽이 나타나는데, 삼척이
자랑하는 동해안의 절경으로 주문진의 소금강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무릉계곡이
시작되는 곳인가 보다. 왼쪽으로 수 백길 벼랑이 아래로 떨어져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고적대와 청옥산, 두타산, 쉰음산(888m)이 병풍처럼 둘러싸서 절경을 이루니
과연 중국의 무릉도원을 연상 할만도 하리라. 음지에서는 얼음이 간혹 있어 미끄럽다.
9시 35분에 갈림 길을 지나 10시 11분에 고적대(1.354m)에 올라선다. 리본 하나를
달고 나니 저만치 모두들 가고 있는데 쳐놓은 밧줄은 끊어져 없어지고 바위 길이
아이젠 찬 발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오르기 전에 벌써 경목 아우가 아이젠이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지팡이 두 개가 모두 부러지고, 옷이 찢어진 것을 보았던 터다.
아이젠도 구식이라 매사는 불여튼튼이라고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을 하는 수밖에.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니 연칠성령(1,184m)이다. 10시 41분. 돌무더기가 쌓여져
있고 유래를 적고 있다. 산세가 험해서 난출령이라 부르기도 했던 연칠성령에서
청옥산을 오르기가 시작 된다. 겁먹게 높아 보이던 산이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서
생각보다는 힘이 덜 든다. 정상 부위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다.
11시 18분에 청옥산(1,404m) 눈밭에 올라선다. .
이 구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청옥산은 임진왜란 때 당시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뜻에서 청옥산이라 했다고도 하고, 이 산에서 청옥이
생산되었다 해서 청옥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는데, 지나온 고적대와 앞으로 보이는
두타산과 함께 해동삼봉으로 불리고 있다. 최고로 부인 ‘알총’이 걸음이 빨라졌기에
오늘부터 ‘총알’이라 하자며 웃겼는데, 가져온 양주를 권해오고, 언제나 술 담당자
뉴욕양Kiss가 잔술과 안주를 내어 놓아 나눠 마시며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상봉 식을 갖는다. 11시 50분경에 다시 출발하여 13시 6분에 두타산(1.353m)에
올라선다. '두타'란 산스크리스트어로 석가의 제자 마하가섭이 누더기 한 벌에
걸식으로 지붕아래 자지 않으며 모든 세속을 털어버리고 수행했던 법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 바위를 의지해서 묘가 서져 있다. 산 사람의 생각에서 보면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아 보이나 좌청룡 우백호 등의 풍수지리학 상식으로는
뒤를 가려준 바위들 외에는 꼽을 만한 것이 없다. 정상에 위치한 묘소에 제대로 된
상석이나 비석이 있는 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 후손이 복을 받아 잘 살게 되었다면,
자기들 이름 내려고 라도 세우는 세상인데, 그렇지 못한 것은 명당자리가 못
된다는 반증일 것이다. 올려다 모시는데 힘들고, 후손들 성묘 다니느라 고생하고,
정상의 신비감도 훼손하는 이런 사례는 깊이 생각할 일이라 하겠다. 몇 해 전 동지
산악회에서 무릎이 잠길 정도의 눈 속에 올랐다가 무릉계곡으로 내렸는데 후미는
날이 어두워 젊은 후배들이 찾아 나서던 기억이 난다.
남쪽으로 향하는 대간 길은 힘든 고비 다 넘기고 일사천리로 14시에 통골 재에 내려
오니 하태암 회장이 과자류를 준비해 두고 올라와 기다린다.
‘시내 벗’ 이조합장과 먼저 출발해 오는데 앞에 만만찮은 봉우리기 솟아 있다.
배가고파 간식을 꺼내 먹고 오르니 한결 힘이 난다. 오른 쪽 골짜기로 빠지는 옛
길이 있어 이 길을 택한 후미들도 거의 함께 도착을 하게 되는데, 한 봉도 놓지기
싫은 오기는 기어코 햇댓등에 올라 리본을 건다.15시 24분. 향하는 내리막길이라
여유만만하게 내려와 낯익은 댓재(810m)에 도착하여 ‘산박’ 등반대장이 건네는
맥주잔을 들이키고 항아가 협찬한 특별 메뉴 ‘두치’ 안주를 받아먹으니
15시 38분이다. 걱정했던 가장 긴 구간을 거뜬히들 해내고 나니 모두가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 휴게소 식당에서 드는 건배 소리가 산천이 떠나갈 지경이다.
松亭(정자 솔) 朴載鎬 鎬朴印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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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정자 솔
글쓴이 : 정자 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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