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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일일묵 제11신-포항시경계1차, 흑매, 창산재 상량문 등

정자 솔 2010. 3. 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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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浦項市界縱走再圖一次區間♡* 포항시경계종주 재시도 일차구간 再圖市界走行環:재도시계주행환 好事多魔做福還:호사다마주복환 雪積內延山隘路:설적내연산애로 水淸晦里谷仙寰:수청회리곡선환 中途脫出途艱遠:중도탈출도간원 澗灘彷徨灘秘慳:간탄방황탄비간 先後同門投合意:선후동문투합의 程蹉日暮也無關:정차일모야무관 시 경계 돌아 걷기 또다시 시도함에 좋은 일에 따른 마귀 복을 지어 돌아온다. 눈 쌓인 내연산은 길이 막혀 더 못가나 물 맑은 회리 골은 신선 계를 이뤄있네. 중도에 탈출하니 길 멀고 어려운데 시내여울 헤매어도 여울 비경 아까워라. 선후배 동문들이 의기가 투합하니 일정에 차질 나고 해 저묾도 상관없네! 2010. 3. 14

♡포항시경계제 1차 구간종주에 다시 참여하고♡ 시경계1구간 ;지경교(부경온천입구)~어사터~292봉~문수봉~삼지봉 2010년 3월14일 일요일. 원래는 이날이 백두대간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진부령 가는 날이나 계속 내려 쌓인 눈 때문에 통제가 되어 마침 시작 하는 동지산악회 시 경계 종주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전기원제 축문과 소지를 챙겨 집을 나와 달전 버스승강에서 기다리니 곧 버스가 도착한다. 인원은 30명, 연령층은 산악회 산행 시와는 판이하게 낮아있고 반기는 얼굴들이 활기 넘친다. 꼭두방재 까지 종주하다가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중단한바 있는 마루금산악회의 경우는 7번국도 입구에서 걷기 시작했으나 오늘은 무거운 제물 운반 등을 고려하여 부경온천에 차를 세우고 7시 50분에 출발을 한다. 2차선 지경천을 따라난 포장도로를 가다가 도씨2세조 묘소입구 표석이 서있는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 바위에 4H마크가 희미해진 아래 어사터 마을 옆을 지나 묘지 뒤편에 자리하여 기원 제를 올리고 되돌아 나와 윗마을로 샛길로 접어든다. 8시 50분에야 돌담이 쳐져있는 짚 옆으로 나있는 낯익은 산길로 묘지를 지나 오른다. 나무가 욱어지고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은 길을 찾으며 오른다. 간간히 지난 번 오를 때 붙여둔 마루금산악회 리본도 눈에 뜨인다. 10시 10분에 292봉에 올라 후미를 기다리며 간식을 나눠 먹고 오른 쪽 소나무 사이로 들어서기까지는 눈에 익은 곳인데 곧 좌회전으로 꺾어 내려야 할 지점에 리본 붙여진 나무가 베어 버려 져 있는 것을 무심히 보고 넘기며 따라가다 보니 한 차례 알바를 한다. 10시 40분에 사람이 살지 않는 용도 불명의 집을 지나 큰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을 지난다. 올라야 할 문수봉을 바라보니 눈이 쌓여 하얗다. 아이젠 준비 못했음이 걱정을 하니 차상헌 산대장이 예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오르고 보니 몰려 쌓인 곳은 무릎이 빠질 지경이나 녹는 눈이라 미끄럽지는 않아 스펫치만 찬다. 남창우 후배와 선두가 되어 문수봉에 오르니 다른 팀들이 공터를 차지하고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사진을 담으니 11시 14분이다. 보경사 2.0km, 1시간 10분, 삼지봉 2.6km, 1시간 30분이라 적힌 이정 표에는 662m, 정상 표석에는 622m로 높이를 적고 있어 헷갈리게 한다. 모두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먼저 출발하여 세 사람이 도로처럼 나있는 길을 추월하며 속도를 내어 삼지 봉에 올라서니 12시 26분이다. 1시간 30분 걸린다는 거리를 30분도 채 안 걸려 도착했으니 아무리 빨리 걸었다고는 하나 이정표의 신빙성에 의문이 간다. 도로 내려 삼거리에서 기다렸다가 동대산 쪽으로 진행하여 양지 바른 눈 녹은 곳에 점심자리를 편다. 이런 속도의 진행으로는 20km 거리주행이 어려운데다 러셀이 되지 않은 눈길이라 옥계까지의 당초 계획을 포기 하고 중간 탈출을 결정한다. 그래서 마음들이 느긋해져서 점심시간도 길어진다. 13시 30분경에 하산을 시도하는데 탈출로가 잘못 잡혔다. 하산 지점으로 잡은 회리까지의 거리가 돌아와 지도를 확인하니 거리로도 가장 먼 지점인데다 리본이 붙어있긴 해도 두 개의 저수지 를 막으면서 철저하게 통제된 골짜기라 길도 험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위복이랄까 덕택에 오염되지 않은 비경은 마음껏 감상하게 된다. 급경사 비탈 눈길을 미끄러져 계곡에 내려서니 15시 30분인데 여기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름드리 감나무와 평자가 있고 돌로 축대를 쌓아 넓게 길을 닦은 흔적이 있으나 눈 녹아 불어난 개울물로 해서 징검다리 뛰어 건너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더니 끝내 길이 막히고 만다. 바위를 타넘고 있는 모양을 보고 위험하다고 다시 능선을 올라가기로 하는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 혼자 가는데 까지 가보겠다 하고 타넘는데 오늘 처음 만난 19회 콜롬비아 사장이 뒤따른다. 돌을 던져 다리를 놓고 발을 적시며 진행하는데 앞에 저 수지가 가로막는다. 할 수없이 옆 절벽을 기어오르니 나물꾼들 길인 듯 희미한 길이 나 있어 저수지 옆을 따라 오르내리며 진행한다.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줄만 알았던 후배도 보이지 않아 고함쳐 불러 봐도 반응이 없다. 길이 막히니 능선으로 올라 합류를 하는가보다 생각하고 외톨이 되어 서두른다. 저 앞에 못 둑이 보이고 배수로 옆으로 공터가 있어 내려만 서면 옆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지팡이를 던져두고 땅버들에 매달리며 절벽을 간신히 내려서 보니 배수로 위 다리에 바위로 막아놓아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다시 기어오를 곳도 없어 살피니 물이 넘치고 있는 ‘맬개’에 누군가가 사다리를 매달아 놓았다. 그곳 밖에 빠져날 길이 없어 타고 내려 폭 50cm 길이 어림잡아 7~80m를 물위로 곡예 하듯 걸어간다. 오른 쪽으로 헛디디면 열길 물속으로, 왼쪽으로 미끄러지면 5m 시멘트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겨우 건너 살았다 하고 포장길을 내려서니 철 대문이 높이 잠겨 있다. 이 지경을 서너 차례 타 넘고서야 도로가 나오고 짓다가 만 호텔 건물도 서 있다. 회3리 승강장이 보이나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김우호 국장에게 전화를 거니 아직 산이라고 한다. 걸음 속도를 늦추어 걸으며 보니 저 멀리 버스가 보인다. 회 2리 다. 버스에 도착하니 17시 40분이다. 젖은 신발을 벗고 차에 올라 기다리는데 기사가 “또 한 분 파김치가 되어 오네요.” 한다. 능선으로 올라간 줄만 알았던 후배가 내 뒤를 따라 오고 있었던 것이다. 듣고 보니 산을 더 올라 못 둑을 지나서 내렸다고한다. 후배도 4차시에 대간을 탔다고 하는데 퇴역한지 오래라서 현역인 나보다는 속도가 떨어지기는 해도 역시 백두대간의 위력은 입증이 되는 것 같다. 남창우 후배가 산 대장을 도와 랜턴을 밝히고 후미를 찾아 나선 정신 또한 그러하다. 비록 어두워서 하산이 완료되기는 했어도, 턱도 없는 운동화를 신고 눈길을 헤맸으며, 물에 빠져 옷 적시는 겨우도 있었으면서도 하나같이 즐거워하는 남녀 후배들 모습에서 성공리에 완주가 이루어 질 수 있음을 가늠하며 귀로에 오른다. 화제해석 하루 종일 봄 찾아도 봄을 얻지 못하고서 언덕 위 구름 속을 집신발로 헤매었네. 때마침 돌아오며 매화 밑을 지나려니 봄빛이 가지 끝에 이미 가득 있는 것을!

    蒼山齋上樑文 舊庄永存先祖之遺躅不泯 門戶增光 古宅重建後孫之誠心克敦 閭巷改觀 옛 고장을 영원히 보존함은 선조가 남긴 자취를 사라지지 않게 함이요 옛 집을 다시 고쳐 세움은 후손들의 정성스런 마음이 능히 도타움에서다. 이로해서 문호가 빛을 더하고 고장이 경치를 고쳐 아름답다. 恭惟 先宗蒼山先生系出 삼가 살펴 보건데 앞선 종친 창산선생의 이어 나옴이 新羅璿源 高麗都評議事公之封密直君 密城裔後 朝鮮刑曹參判公之殉龍蛇亂 신라왕실을 근원하여 밀성대군의 후예다. 고려조에 도평의사공은 밀직군에 봉해졌고 조선조 형조참판공께서는 인진 란에 순국하셨으니 世德彬彬光被錦繡之山河 忠功赫赫名垂悠久之竹帛 세덕이 빛나고 빛나 빛이 금수강산을 뒤덮었고 충성 공적 혁혁하여 역사에 길이 명성 드리웠다. 公生後代 天資明敏生得出衆之峻才 胚受前光 學問崇深公認拔群之巨擘 공께서는 그 후대로 전대의 광영을 몸에 지니고 태어나서 천품이 명민하여 무리를 벗어난 높은 재능을 타고 났으며 학문은 높고 깊어 무리에 빼어난 엄지손가락으로 꼽혔다. 嘗知時運不齊 務實晝耕夜讀而順承家業 亦覺括囊无咎 成趣風吟月弄而優樂林泉 일찍이 시운이 고르지 못함을 알았고 또한 도가 무너진 세상에서는 주머니를 졸라매듯 해야 허물이 없다는 이치도 깨달아 주경야독으로 가업을 이어가는데 실로 힘을 쓰고 풍월을 읊고 자연을 넉넉하게 즐기는 것으로 취향을 삼았다 崇祖殫誠宗事竭力之忠信以薦崇德殿參奉之榮 奉親養志兄疾嘗糞之孝悌以建蒼山齋軒檻之屹 조상을 숭배함에 정성을 다하고 종친 사업에 힘을 기울여 충직과 믿음으로 숭덕전 참봉의 영광에 천거되었으며 부모를 섬김에 마음을 즐겁게 봉양하고 형의 병환에 똥을 맛보아 약을 쓰는 효도와 우애공경이 있었기에 창산 재를 높이 세우게 될 수 있었다. 星移悠久破甍殘礎變成鳥鼠之竄藏 非獨留靈之不幸 物換滄桑霽月光風只作樵牧之歌詠 亦爲遺裔之無顔 세월이 오래됨에 기와가 깨어지고 주춧돌이 헐어 새와 쥐들이 숨어들고, 상전벽해로 세상이 바뀌어 밝은 달빛 맑은 바람의 풍치는 나무꾼과 목동의 노래에서나 불려 지는지라 비단 혼령이 머무시는 데에만 편치 못할 뿐 아니라 또한 남은 후손들도 볼 낯이 없게 되었다. 乃會闔宗祛列橐而聚貨 輸材木於遠鄕 因涓吉日掃舊基而起工 募匠人於大邑 이에 종친들이 모여 의논하여 주머니를 열어 재물을 모우고 좋은 날을 받아 옛터를 쓸고 공사를 일으키니 먼 지방에서도 목재를 보내오고 큰 도읍지에서 장인들을 모집해 세우게 되니 苟完苟美 聖人與世推移以裕後適 不儉不奢 賢祖貽謨承繼以美風宜 진실로 완전하고 진실로 아름다우며 검소하지도 않고 사치하지도 않아 성인도 세상 변화에 따른다 했듯이, 번창 한 후손들의 격에 알맞고 어진 조상의 유훈을 계승하는 미풍에도 마땅하도다. 院乃告成見棟宇之輪奐 先陳燕賀 兒郞偉抛樑東 將擧虹樑 扶桑旭日照窓紅 마침내 집이 우뚝하게 완성되어 낙성을 고하게 되는지라 제비 먼저 날아와 축하하고 무지개 대들보를 들어 올리는데 도우고자 하나니 아랑위야 대들보를 동쪽으로 들어보자 부상에 돋은 해가 창에 붉게 비춰오니 駿奔遠近諸儒會 兒郞偉抛樑西 人仁物盛鄕風美 爭頌咿唔畵棟中 文殊山屹佛恩垂 期約從來國富基 원근의 모든 선비 달려와 모여앉아 그림그린 기둥 가운데서 다투어 기려 읊네. 아랑위야 대들보를 서쪽으로 던져보자. 문수산 높이 솟아 부처님 은혜 드리운다. 사람 어질고 만물이 풍성하여 고향 풍속 아름다워 예로부터 나라 부강 터전 됨을 기약했네. 兒郞偉抛樑南 倒影湖心成活畫 兒郞偉抛樑北 神仙山頂聳仙巖 市民訪客口難緘 舞龍山瞰太和江 아랑위야 대들보를 남쪽 높이 들어보자. 신선 산 정상위에 신선 바위 솟아있어 호수 가운데 그림자 비춰 그림 살아 움직임에 시민들과 찾은 손님 입 다물기 어려워라. 아랑위야 대들보를 북쪽으로 던져보자 무룡 산이 태화강을 굽어보고 앉았는데 時乘九五雄飛勢 兒郞偉抛樑上 陟降精靈昭著此 灌漑農工董裕邦 院宇翬飛碧落掀 縉紳殺到仰瞻尊 비룡재천 때를 타서 웅장하게 나는 기세로 농토 공장 물을 대어 부자나라 되게 감독하네. 아랑위야 대들보를 위로 높이 던져보자. 재실 집 날아올라 푸른 하늘 뒤흔든다. 정령께서 오르내리실 때 여기 밝게 드러나고 벼슬 높은 선비들이 몰려들어 우러러 받든다. 兒郞偉抛樑下 登臨朗誦瓊章際 靑山碧水屋簷回 不必江陵境浦臺 伏願上樑以後 아랑위야 대들보를 아래로 던져보자. 푸른 산 맑은 물이 처마를 에워싸니 여기 올라 명문장을 소리 높이 읊으려니 강릉의 경포대가 필요 없게 되는구나. 엎드려 비나이다. 상량을 한 뒤에는 三災俱滅 繼述文武家聲講詩書守靑氈 恒念創業實難 五福並臻 傳承忠孝世德養父母行白業 勿忘守成不易 삼재 모두 없어지고 오복 함께 이르러서 문무 간에 가문 명성 이어서 기술하고 시서를 강독하며 유풍을 받들 지며 충효 세덕 전함 잇고 보모 봉양 착한행실 힘쓸 지며 창업 실로 어려움을 항상 생각 가지면서 이룬 것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 잊지 말아 朝夕掃室堂心神淨潔 歲時薦芬馝香火氤氳 아침저녁으로 집안을 쓸고 마음과 정신을 깨끗이 하며 때에 맞춰 맛나고 향기로운 음식을 올리고 향불 연기 어리게 하라. 新羅紀元二千六十七年歲在庚寅夾鐘月 日月詩易硏究會長密陽朴載鎬謹識 * 括囊无咎(괄낭무구): 주역 곤괘 육사효사. 천하에 도가 무너졌을 때는 주머니를 졸라매듯 조심을 해야 허물이 없다고 했음 * 九五(구오): 주역 건괘 다섯째 효, 飛龍在天(나는 용이 하늘에 있음)곧 임금의 자리니 무룡산 역시 용이 춤춘다는 뜻이 같으므로. 松亭(정자 솔) 朴載鎬 鎬朴印載
출처 : 정자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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