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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7차 솔나불: 주왕산, 고사성어-死灰復燃, 三人成虎

정자 솔 2018. 11. 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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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探周王山(탐주왕산)♣♡* 
 
 주왕산을 찾다

周王山有窟周王:주왕산유굴주왕
傳說由多秘境藏:전설유다비경장
仙女湯中回玉水:선녀탕중회옥수
鶴巢臺上繞金光:학소대상요금광
飛泉響谷韶虞奏:비천향곡소우주
聳嶂撐天錦繡張:용장탱천금수장
耳得聲音無不樂:이득성음무불악
騁懷寓目總文章:빙회우목총문장
주왕 굴 이름 하여 주왕산에 존재하여
이로 하여 전설 많고 비경을 감춰있다.
선녀탕 가운데는 옥 같은 물이 돌고
학소 대 높은 곳에 황금빛이 감도누나.
폭포는 골짝 울려 순임금 음악 타고
솟은 산봉 하늘 받쳐 비단 수를 펼쳤구나.
귀로 얻는 소리들은 음악 아닌 것이 없고
맘 달리고 눈 붙이는 모든 것이 문장이다. 2018. 11. 17.
  
* 韶虞: 순임금의 음악.    


 *♡♣주왕산을 올라 걷다♣♡* 

대전사-주왕굴-주왕굴-학소대-선녀탕-절구폭포-금은광이입구-칼등고개-주봉-대전사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한림산수회가 주왕산을 찾기로 한 날이디. 벽계선생이 참가한다기에 07시에 집을 나와 
연화재주차장까지 가서 승용차를 주차해두고 버스에 오르는데 참석키로 한 벽계선생이 
오질 않아 그대로 출발했는데, 잘 못 들었는지 혹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인지 
다음 주로 알고 있었다며 산행 시에야 연락이 온다.
 08시 20분경에 꼭두방재휴게소에 들려 아침을 나눠먹고 안개가 자욱해 꼬부랑길을 천천히 
몰아가다가 08시 50분에 삼자현(三者峴-옛날 도적이 많아 세 사람이상 모여야만 고개를
 넘었다하여 생긴 이름)에서 쉬면서 사진들을 담고 주왕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가 
되어간다. 10시 07분에 대전사를 지나 골짜기로 들어가 걷다가 10시 25분에 주왕굴을 향한다. 
  10시 40분에 주왕굴에 도착해 사진을 담고 중턱으로 나있는 길을 걸어 학소대로 향하다가 
지어놓은 전망대에 올라 곡차를 마시며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담는다.
 이때시각 10시 50분.  
11시 10분에 골짜기로 내려서서 폭포들과 선녀탕이 빚어내는 주왕골의 하이라이트 
절경을 눈과 사진에 담으며 진행해 가다가 절구폭포를 들리기로 한다. 
  11시 33분에 절구폭포에 도착해 사진들을 담고 간식을 나눠먹고 다시 돌아 나와 
학소대를 지나 용연폭포 등을 완상하고 무지개다리를 넘어서니 
후미들이 오히려 먼저 와서 점심자리를 펴고 있다.
  점심을 먹은 후 산행을 더하고 싶어 정해동씨와 주봉을 오르기로 하고
 12시 30분에 먼저 일어나 12시 36분에 우리메기입구로 와서 칼등고개로 오르기로 한다. 
  밥 먹은 뒤라 술기운도 있어 급경사 오르는 길엔 땀이 난다. 
주봉에 도착하니 14시가 되고 사진을 담고 서둘러내려 골짝 갈림길에 내려서니
 14시 46분, 주차장에 도착하니 15시가 된다. 
  하산주 자리가 마땅치 않아 영덕방향으로 진행하다가 하산주  자리를 펴는데 
오늘따라 어묵을 끓여 과메기 무침과 함께 푸짐한데, 개 한 마리가 나타나 허기져
 하기에 남은 밥들을 주니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주는 대로 다 받아먹고도 
더 바라는 눈치다. 짐승이지만 가여운 생각이 든다.
  영덕방향을 택하다가보니 끝이 되어서야 연화재에 내려 귀가하게 된다. 


 *♡♣死灰復燃 (사회부연)♣♡* 

죽은 재에서 다시 불꽃이 타오르다.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둘째 아들인 양(梁)나라 효왕(孝王)의 신하 한안국(韓安國)이 
법을 어겨 감옥에 갇혔는데, 옥리(獄吏) 전갑(田甲)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한안국이
 말하길 "내가 평생 죄수로 있을 줄 아느냐?
 다 식은 재에서  어찌 다시 불이 타오른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하며 나무라자,
옥리 전갑이 
“설령 다시 불 붙는다하더라도 내가 거기에 오줌을 싸 꺼버리겠소" 하며 비꼬았다.
얼마 후에 한나라에서 사자를 보내 한안국을 양나라의 내사(內史)에 제수하자, 
한안국은 죄인의 몸에서 2,000석의 봉록을 받는 고관이 되자 
옥리 전갑은 보복이 두려워 달아나 버렸다. 
“전갑아, 돌아와 직책을 지키지 않으면 너의 집안을 멸족해 버리겠다.”고 하니
전갑이 돌아와서 웃옷을 벗고 뉘우치며 사죄를 하였다.
그러자 한안국은 "다 식은 재에서 다시 불이 붙었지 않느냐?
 어서 오줌을 싸서 불을 꺼보도록 하여라"면서 껄껄 웃고는
"내가  어찌 너같은 무리와 더불어 지난 날을 따지겠는가!!". 
라고 말하며  전갑을 넓은 도량으로 풀어줍니다. 
(其後安國坐法抵罪, 蒙獄吏田甲辱安國. 安國曰, 死灰獨不復然乎. 田甲曰, 然卽溺之.
 居無何, 梁內史缺, 漢使使者拜安國爲梁內史, 起徒中爲二千石. 田甲亡走. 安國曰,
 甲不就官, 我滅而宗. 甲因肉袒謝. 安國笑曰, 可溺矣. 公等足與治乎. 卒善遇之.)」
이 이야기는《사기(史記)〈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에 나오는데, 한안국의 말에서
 ‘사회부연’이 유래했다 근자에 넓리 쓰이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三人成虎(삼인성호)♣♡* 
 
[출전]전국책 위책 혜왕(戰國策 魏策 惠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근거 없는 거짓말 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곧이듣게 됨을 이르는 말.(三人成市虎 : 삼인성시호).
전국 시대(戰國時代 : B.C.475-B.C.221), 위(魏. = 梁)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위나라는 외교 관례상 조(趙)나라에 인질로 태자와 그의 수행원을 보내야만 하였다.
태자와 중신 방총(龐蔥)이 볼모[人質]로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그땐 믿을 것이오."
그러자 방총이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왕은 어떤 중상이든지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방총이 조나라로 떠나자마자 방총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몇 년 후 인질로 간 태자는 풀려났으나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귀국하지 못한 
신세가 되었다. 방총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왕에게 간언한 것이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이며, 
유언비어로 진실을 숨기는 것을 비유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松亭(정자 솔) 朴載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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