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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6차 솔나불:음성 함박산, 고사성어-

정자 솔 2018. 12. 1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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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陰城陷瓟山(음성함박산)♣♡* 
 
 충북 음성 함박산을 찾다

忠北陰城陷瓟山:충북음성함박산
山稱不足以高艱:산칭부족이고간
松林垂影供淸氣:송림수영공청기
湖水含光設別寰:호수함광설별환
白雪景添令旅醉:백설경첨령여취
碧天日照使人閒:벽천일조사인한
逍遙漫步優遊際:소요만보우유제
聊覺無差樂土間:료각무차락토간
충청북도 음성군에 함박 산이 자리한데
높이나 난이도론  산 칭하기 부족하나
솔숲이 그늘 지워 맑은 공기 공급하고
호수 물은 빛 머금어 별천지를 베풀었다.
백설이 경치 더해 여행객 취하는데
푸른 하늘 태양 비춰 한가롭게 하는구나.
느린 걸음 소요하며 넉넉하게 놀 수 있어
자연을 즐김에는 차이 없음 깨닫는다.
     2018, 12. 15.


 *♡♣음성 함박산을 찾다♣♡*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어제 농심회의 환선동굴과 죽서루, 해신당 등을 다녀왔고 오늘은 한림산수회가 
충북 음성에 있는 함박산을 찾게 된다.
  07시에 집을 나와 연화재 넘어 기도원 입구에 승용차를 주차해두고 기다렸다가 
버스에 오르니 25명만 참가하게 된다.
  08시경에 영천휴게소에 들려 아침을 나눠먹고 영천 상주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문경휴게소를 거쳐 산행 들머리 두촌성당에 도착하니 10시 48분이다. 
  곧 산행이 시작되는데 내린 눈이 약간 쌓여있으나 얼지 않아 아이젠을 찰 필요가 없다.
  11스 08분에 첫 능선에 올라서고, 어제까지의 강추위는 누그러지고 바람 없는
 맑은 날씨라 천천히 걸어 진행하니 올레길 걷는 기분이다.     
  11시 25분에 성황당고개에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11시 42분에 쪽박산에 올라 
설치해둔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안내판에 쓰인 내용을 살펴보니 태고 천지개벽 
시에 큰비가 내려 이 산 정상 부위가 쪽박만한 크기 밖에 남지 않았다 하여 
쪽박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2시 03분에 정자가 높이 세워진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이라고는 하나
 고작 340m 정도인데, 그럼에도 주위에 산이 없어 조망은 훌륭한 편이다.
 이 함박산은 맹동면 군자리, 쌍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소속리산의 남쪽에 있으며 
산세가 순해서 여성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일명 함표산이라고 한다. 
 함박산 아래 군자터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는데 조선 선조때 국자감 주부 김종립이
 터를 잡았다 하여 국자감의 이름을 따서 군자동이라고 하였다 하며 함박산에 올라 
1983년도에 축조된 맹동저수지를 바라보면 넓은 호수처럼 보이고 음성군 대소면, 
삼성면과 진천군 덕산면의 넓은 평야를 볼 수 있다.  함박산이라는 지명은 
그 옛날 천지개벽할 때 모든 세상이 물에 잠겼는데 오직 함지박 하나를 
놓을 자리가 남아 있어 함지박산(함박산)이라 했다고 한다. 
  정자에 올라 점심을 먹고 시조창더 한 가락 뱉어내며 조망을 즐기다가 13시 경에
 하산을 시작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 내리니 13시 52분이다.
  하산이 완료되어 15시 경에 옆 공터에서 하산주 자리를 펴고, 준비한 대로 참석지 
않아 남아돈 음식으로 저녁까지 챙겨먹고서야 귀로에 오른다.


 *♡♣伯樂一顧(백락일고)♣♡* 

보는 법을 가르치며 “좋은 말은 불쑥 나온 이마에 툭 튀어나온 눈, 누룩을 쌓아 놓은
 것과 같은 말발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백락이 한 번 
돌아다본다.'는 뜻으로,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빛을 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백락은 춘추전국시대 주나라 사람으로 
말(馬)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 평범해 보여 주목받지 못하던 말도 그가 한 번 
눈길을 주면 그 자리에서 값이 열 배로 뛰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준마를 시장에 
내놓았으나 사흘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자 백락을 찾아가 “내게 훌륭한 말이 있으니 
한 번만 보아 달라”고 청했다. 이에 백락이 그 말곁을 지나며 한 번 돌아다보았는데,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앞 다투어 서로 그 말을 사려하는 바람에 말 값이 열배나 
올랐다고 한다. ‘백락일고’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됐다. 이 백락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백락은 아들에게 말을 굽을 가져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백락의 아들은 
아버지가 일러 준대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명마를 구하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두꺼비를 잡아와서는 “명마를 한 마리 구했습니다. 말씀하신 관상과 대략 
같습니다만 말발굽만은 누룩을 쌓아 놓은 것과 다릅니다.”하고 말했다. 백락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백락의 아들은 말의 본질은 도외시한 채 아버지가 말해준
 외관에만 집착했기에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
백락자(伯樂子)’ 즉 백락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어리석은 자식을 뜻하게 되었다.

 *♡♣伯牙絶絃(백아절현)♣♡*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 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말. 
중국 춘추전국시대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지만 진(晉)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있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큰 강을 나타내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강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고 한다.
   松亭(정자 솔) 朴載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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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정자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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